[특파원 칼럼]'애국가 제창은 생략하겠습니다'

김은별 뉴욕 특파원

[아시아경제 뉴욕 김은별 특파원] "시간 관계상 애국가 제창은 생략하겠습니다."지난달 28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32번가에서 열린 '뉴욕 코리아센터 기공식'. 국민의례 중 사회자가 빠른 진행을 위해 애국가를 생략했다. 야외에서 진행되는 행사인데다, 이날 맨해튼의 날씨는 말 그대로 푹푹 찌는 한여름 날씨라 다들 자연스럽게 넘기는 분위기었다. 그런데 갑자기, 행사 참석자 중 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왜 애국가를 생략하느냐"라는 것. 한국인이고, 뉴욕에서 살고 있다는 이 교민은 "여기가 코리아센터 기공식인데 아무리 미국이라도 해도 그렇지 왜 애국가를 생략하느냐"며 한국어와 영어로 번갈아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행사를 소란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 교민의 말도 일리는 있다. 코리아센터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해외문화홍보원이 건립하는 건물로, 세계 중심지 뉴욕에서 한국을 알릴 중요한 건물이기 때문이다.2009년 부지를 매입한 지 9년 만에 공사에 들어가게 된 뜻깊은 행사인 만큼, 이날 행사에는 뉴욕 뉴저지 일원의 한인단체 임직원, 문화예술계 인사 및 건축설계·공사관계자 등을 포함 약 150여명이 참석했다. 얼핏 봐도 한국인이 절반을 넘기고, 나머지는 현지인들인 것으로 보였다. 몇 번의 고성이 오간 후 행사는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한국 교민은 애국가를 부를 때까지 본인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소리를 쳤다. 사람들의 표정도 묘해졌다. 결국 이날 행사에서 주최 측이 애국가를 생략해 미안하다며 "반주는 없더라도 다같이 불러보면 어떻겠냐"고 제의하면서 소란은 마무리됐다.미국인들은 국가 제창에 열심이다. 야구장, 농구장 등 대부분의 행사에서 국가 제창이 빠지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운동경기 전 애국가를 부르기는 하지만, 미국인들만큼 열심히 따라 부르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이들은 모자까지 빠짐없이 벗어들고 목청껏 국가를 부른다. 만약 테러나 국가적인 재난이 발생했을 때에 국가 제창의 목소리는 더욱 커진다. 미국인들의 나라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가에는 나라의 역사와 문화, 지향하는 가치가 담겨 있다. 때로는 마음 깊은 속에 있던 애국심을 끌어내 뭉치는 매개 역할을 한다. 젊은 사람들도 목청껏 국가를 부르고 환호하는 모습을 보면 부러움도 살짝 생긴다. 최근 한국에서는 약식 국민의례가 보편화되고 있고,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경례 등 격식에 집착하는 것을 '쿨하지 못하다'고 보는 성향도 있는 것 같다. 특히 젋은 세대들 사이에서 이런 성향은 더욱 생겨났다. 세대간의 갈등, '태극기 부대'라는 상징성 등이 겹쳐지면서 국기와 국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해져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지나치게 많은 격식과 절차에 집착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국민의례를 생략하는 것이 불법도 아니다. '국민의례 규정'에 따르면 제 4조에서 절차 및 시행방법을 규정하면서 정식절차와 약식절차로 구분했다. 약식 절차에서는 애국가 제창을 생략할 수 있도록 했고, 행사 유형에 따라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생략하는 것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이런 규정은 차치하더라도 최근 국민의례 절차 자체를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인식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린이들 사이에선 제대로 된 국민의례 절차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제 이틀 후면 미국은 독립기념일을 맞는다. 온 동네에 성조기가 휘날리고 국가를 듣게 될 것이다. 벌써부터 성조기를 모티브로 한 티셔츠도 잔뜩 팔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국기, 국가에 대한 인식이 좀 더 바뀌길 바라는 마음이다. 뉴욕 김은별 특파원 silversta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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