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당신이나 그 앞에 앉은 나나 귀신 같아서 좋은 봄날의 소풍/이승희

따뜻한 후회처럼 바람이 불어서버려진 신발처럼눈을 뜬 당신이나눈을 감은 나나손 닿지 않을 발톱이나 깎는다지너무 멀어서좋은당신은버드나무 아래를 걸으며첫 물을 받아들이는소녀처럼간지러운 웃음눈꺼풀 속으로수천수만의 설렘들 날아다니는이 봄날의 폐허받아 적는다몇 년째 물오르지 않는 나무변명은 그와 같아서서로를 향한 조문그립다지조금씩 흐르는 물처럼오줌이 마려운 나는당신과 앉아서 하루 종일 놀다 가려 하네문상객들이 사라진 이 봄날엔
이 시가 어떤 실제 사연을 품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런 유의 호기심은 아무래도 시의 속마음을 만나러 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아 보인다. 그리고 눈을 뜨고 있는 당신이 실은 죽은 사람인지 그 앞에 눈을 감고 앉아 있는 내가 의외로 죽은 자를 자처하고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문상객들이 사라진 이 봄날" "따뜻한 후회처럼" 부는 바람 속에서 당신과 내가 서로 그리워한다는 점이다. 오월이 가고 있다. 이 한 문장으로도 까닭 없이 한동안 애잔하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오월에 꽃잎 지듯 죽은 사람들이 못내 그립다.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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