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의 빛…10억 연봉 거절한 청년이 꾼 꿈의 역사

[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더 이상 국내 금융회사들은 변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내 금융회사들끼리 서로 시기할 필요도 질투할 필요도 없다. 이합집산하고 있는 국내 금융회사들이 3~4개로 합쳐 우량투자회사로 거듭나 해외로 나가야 한다.”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2007년 자신의 저서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서 국민소득 3만달러로 가기 위한 금융의 과제로 제시한 대목이다.그는 또 “내가 지금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업계 지도에서 사라져버린 대우그룹”이라며 “자본시장이 발달해 투명성에 대한 감시 기능을 강화했다면, 대우그룹은 지금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해외에서 대우의 명성을 접할 때면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고 했다. 어쩌면 그 때부터 박 회장은 대우증권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2015년 말 대우증권의 매각 본입찰에서 미래에셋증권은 2조4000억원 후반대를 제시했다. 경쟁사보다 1000억원 이상이 많았다. 주위의 예상을 깬 파격적 베팅이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직후 박 회장은 “한결 같이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미래에셋의 진정성을 알아준 것으로 생각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꿈을 향해 또 다시, 큰 발로 성큼 다가가는 순간이었다.미래에셋은 7월1일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1997년 자본금 100억원의 벤처캐피탈로 출발해 지금은 업계 1위의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를 비롯해 생명보험, 캐피탈, 부동산114 등 11개 계열사를 둔 거대 그룹이 됐다. 계열사의 자본금은 모두 13조8000억원에 이르고 창립 초기 8명이던 직원이 1만1600명으로 불어났다. 그룹 전체 운용자산(AUM)은 368조원에 이른다.
미래에셋은 박 회장의 성공 신화 결정체다. 물론 순탄치 않은 길이었다. 시련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그가 ‘인생 최대의 시련기’로 꼽는 것은 1980년대 말 한신증권 계열사인 한신투자자문에 근무할 때다. 증권시장이 폭락하던 때에 갑자기 본사에서 지점으로 발령을 받았다. “한마디로 지옥에 떨어진 심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위기는 기회를 내장하고 있었다. 지점장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 뒀고 당시 불과 32세의 박 회장이 지점장을 맡게 된 것이다. 그는 50명이던 직원을 절반으로 줄이고 30대 청년들로 영업 진용을 구축했다. 이 때 만난 이들 중 한 명이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이다. 철저한 분석이 모토였다. 연구를 위해 밤 10~11시까지 야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6개월간 사표를 품고 일했다. 결국 그는 전국 증권사 지점 1000여개 중 1위라는 성적을 확인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이후에도 젊은 나이에 승승장구하자 한 외국계 증권사가 연봉 10억원을 제시하며 스카우트 제안을 해왔다. 35세였고 강남 아파트 3.3㎡당 가격이 350만원이던 시절이었다. 외국 유학 비용을 모두 대주고 이사 자리를 주겠다는 제안도 있었다고 한다. "미래에 자산운용업을 하겠다"는 꿈 때문에 거절했다. 그는 "그 때 내가 연봉이나 자리에 얽매여 옮겼다면 오늘날의 미래에셋은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도전은 이처럼 강렬한 꿈에서 비롯됐다. 1997년 창업해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 ‘박현주 1호’를 내놨다. 출시한 지 2시간 반만에 판매 한도 500억원이 모두 소진됐다. 펀드 해산 때 투자 수익률은 2배에 가까웠다.이후에도 최초의 부동산 펀드와 해외 채권 펀드, 사모펀드(주식을 대량 인수해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 등을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1999년 설립한 미래에셋증권은 기존 증권사와 달리 자산관리 서비스에 집중해 채 10년도 되지 않아 국내 대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2005년에는 SK생명을 인수하며 미래에셋생명을 출범시켰다. 기존 보장성 보험 위주의 시장에 투자 상품인 변액보험을 더하고 국내 보험사 최초로 모든 금융상품을 원스톱으로 가입할 수 있는 금융플라자를 만들어 주목받았다. 2015년 말에는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을 인수해 독보적인 국내 1위 자리에 올라섰다. 미래에셋생명도 지난해 11월 영국계 PCA생명 인수에 성공해 대형 보험사로 한 단계 도약하게 됐다. 미래에셋의 눈은 언제나 나라 밖을 향해 있었다. 2001년에 자산운용사로서는 국내 최초로 해외 진출을 선언했고 2003년 초 박 회장이 직접 국제부 팀장 역할을 하며 해외 법인 설립을 추진했다. 그 해 말에 금융 중심지 홍콩에 미래에셋자산운용 법인을 세웠다. 현재 미래에셋 그룹은 세계 15개국에 법인 및 사무소를 설립하고 30여개국에서 펀드를 판매하고 있다. 박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 “지난 20년 간의 성공을 잊고 초심으로 돌아가 투자의 야성을 갖고 제2의 창업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10년 전 그는 ‘아시아 1등’을 목표로 제시했다. 아직 갈 길이 먼 셈이다. 미래에셋대우는 최근 네이버와 전략적 제휴에 합의하고 양사 자사주를 각각 5000억원씩 상호 매입키로 했다. 이는 디지털 금융 서비스의 한 단계 도약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 역시 동남아 시장에서 온라인 고객을 대대적으로 확대하려는 글로벌 전략을 염두에 뒀으며,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또 다른 도전에 나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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