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종기자
원다라기자
1987년8월 삼성 반도체 3라인 착공식에 참석해 조감도를 살펴보고 있는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
[아시아경제 강희종 기자, 원다라 기자] 삼성전자가 인텔의 반도체 패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기까지는 이병철 선대 회장부터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까지 3대째 이어져온 '반도체 왕국'의 오랜 염원이 작용했다. 이병철 선대 회장의 '도쿄 구상'으로 시작된 반도체 도전은 지난 34년간 위기와 고비 때마다 불굴의 집념과 투지로 극적인 성장 드라마를 연출했다. 무엇보다 '불황일 때 투자한다'는 경영진의 굳은 신념은 '초기술 격차'를 유지하며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하는 쾌거를 낳았다.◆삼성전자 반도체 신화를 가능케 한 '도쿄 구상'=이병철 삼성그룹 선대 회장이 반도체 산업 진출을 결심했던 1983년 한국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주위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이병철 선대 회장은 "앞으로 한국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산업은 반도체밖에 없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는 당시 한 신문 기고에서 "저가품 대량 수출에 의한 국력 신장은 한계에 이르렀다. 삼성은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반도체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고 반도체 진출 이유를 역설했다.이보다 한 달 전인 2월8일 이 선대 회장은 일본에서 그룹 차원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결심했다. 당시 일본 미쓰비시연구소는 삼성 반도체가 실패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낼 정도로 주위의 시각은 부정적이었다. 삼성은 마이크론과 64K D램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지만 마이크론은 기술이전에 소극적이었다. 관련 기술자들은 연구소 대신 인근 모텔에서 설계도면을 바탕으로 사실상 '독학'해야 했다. 결국 독자 개발하기로 한 삼성은 309가지 반도체 공정 프로세스를 6개월 만에 독자기술로 습득하는 성과를 거뒀다.반도체 30주년 행사에 참석한 이건희 회장이 사인판에 '새로운 신화 창조'라는 글을 적고 있다.
◆반도체 신화, 두 번의 큰 위기=삼성이 메모리 반도체 개발을 마치고 본격 수출하기 시작했던 1984년 메모리시장에는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었다. 1984년 4달러 수준이던 64K D램 가격은 폭락을 거듭해 1985년 중반에 30센트까지 떨어졌다. 제품을 하나 팔 때마다 1달러40센트를 손해 보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당시 인텔은 삼성의 1M D램 개발이 한창이던 1985~1986년 백기를 들고 D램 사업 철수를 선언하기도 했다. 심지어 삼성반도체로 발령이 나면 회사를 퇴직하겠다는 직원도 있었다.반도체 가격 폭락으로 손실이 이어지는 데다 반도체 사업을 추진해온 이병철 선대 회장이 영면하자 1987년 삼성 중역들은 신임 이건희 회장에게 반도체 사업을 포기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반도체 사업 추진을 강행했다. 결국 이듬해인 1988년 반도체 호황이 찾아왔고 삼성은 그동안 투자했던 재원 이상을 반도체 사업에서 벌어들이게 됐다. 2차 위기는 1990년대 'D램 대전'이었다. 당시 미국 인텔을 포함해 일본 NEC와 도시바, 독일 인피니언 등 기라성 같은 업체가 D램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다. 1994년 세계 D램 업체 수는 25개였지만 10년 뒤인 2002년에는 12개, 또다시 10년 뒤인 2012년에는 3개로 줄어들었다. 30년에 걸친 D램 대전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사만 살아남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치킨게임이 두려워 경쟁을 피하고 투자를 보류했다면 아마 반도체 역사에서 삼성이라는 이름은 사라졌을 것"이라며 "위기 때 오히려 투자를 강화한 경영진의 판단이 주효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