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성장과 도약]R&D예산 늘렸지만 컨트롤타워없는 정부…기업만 뛴다

[4차 산업혁명,성장과 도약-3·끝]대변혁을 위한 과제

-4차 산업혁명 기술경쟁력 확보 없이 기업 생존 어려워 -정부도 R&D 예산편성 확대, 예산 집행 효율성이 더 중요-이중삼중 규제로 힘겨워하는 기업…민간 중심의 유연한 대응 필요성
[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 2007년 개봉한 영화 미스트(MIST)는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직면한 인간의 심리적 공포를 잘 그려냈다. 어느 날 갑자기 '짙은 안개'로 뒤덮인 도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건들, 초조한 표정으로 창밖을 주시할 수밖에 없는 주민들의 모습이 어우러지면서 거리는 극한의 공포로 뒤덮인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는 재계의 현실은 미스트에 등장하는 주민들과 다름없다. 누구도 명쾌하게 정답을 얘기해주지는 않지만, 어떤 형태로든 대응방안을 마련해 상황을 돌파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기업들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loT), 로봇공학, 무인운송수단, 3차원 인쇄, 나노기술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력을 확보하고자 노력하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기업 생존의 갈림길, 혁신방식부터 변화=기업이 체감하는 공포는 정부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글로벌 경제 질서의 변화를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다. 기업은 5년 후, 10년 후를 내다보는 투자, 시대를 앞서가는 기술력과 뛰어난 인적자원이 어우러져야 글로벌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시대 변화의 패러다임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세계를 호령하던 기업도 몇 년 지나지 않아 경쟁의 대열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것을 현실에서 보고 느꼈다. 휴대폰 시장 점유율 세계 1위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대'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해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장면은 남의 얘기가 아닌 셈이다.
재계는 4차 산업혁명을 위기이자 기회로 판단하고 대응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 회장인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월 KEA 정기총회에서 "미래에는 제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기술경쟁력 확보 여부가 기업 생존의 갈림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KEA는 올해 loT 협업센터를 본격 가동하고,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신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에너지, 의료, 유통물류, 해양IT 등 다른 업종의 협업 강화에도 힘을 쏟을 방침이다. 재계는 기존의 관행을 뿌리부터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숨기지 않고 있다. 혁신의 목표와 과정을 재점검하고 현실에 맞게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지난달 30일 'LG혁신한마당'에서 "기술과 산업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큰 흐름을 볼 때 지금까지 해온 방식으로는 안 된다"면서 "혁신의 과정을 시대가 요구하는 수준에 맞도록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4차 산업혁명' 예산 증액, 하지만…="산업기술 R&D 사업을 통해 4차 산업혁명 등 산업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겠다." 강성천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은 올해 3조3382억원 규모의 산업기술 연구ㆍ개발(R&D) 예산 편성의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산업부의 R&D 예산 편성의 초점은 4차 산업혁명에 맞춰져 있다. 산업부는 자동차 분야 핵심기술개발, 로봇산업 핵심기술개발, 반도체ㆍ디스플레이분야 연구개발 예산을 지난해보다 22.5%~78.4%까지 증액 편성했다. 또 무인항공기, 가상현실ㆍ증강현실 등 성장 유명 산업 지원을 위한 6개 사업에 1007억원의 예산을 신설 편성했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가 시급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등 경쟁국보다 늦은 측면은 있지만,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은 공감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2018년 예산안 편성의 4대 핵심분야에 '4차 산업혁명 대응'을 포함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국정운영 컨트롤타워 기능을 둘러싼 우려는 여전하다. 최순실 사건 여파로 지난해부터 국정관리 기능이 위축되고, 대통령 공백 상황이 지속되면서 국가 과제를 힘 있게 추진할 동력이 약화한 탓이다. 정부의 예산 지원도 중요하지만, 효율적인 집행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재계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 예산 편성은 환영할 일이지만, 정밀한 집행 전략이 선행되지 않으면 예산 나눠먹기로 변질될 수 있다"고 말했다. ◆4차 산업혁명 감당할 준비 돼 있나=정부의 예산 편성과 집행은 4차 산업혁명 대응의 과정일 뿐이다. 예산 투입을 결정했다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부부처와 관련 기관들은 경쟁적으로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한 정책과 해법을 발표하고 있지만, 설익은 내용이 대부분이다. 장밋빛 청사진과 달리 실행 계획에 의문이 있고, 타 부처와 내용이 중복되거나 충돌하기도 한다. 5월9일 대통령 선거 이후 정부 조직개편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면서 자기 조직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작동된 탓이다. 저마다 우리 부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다 보니 역할 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얘기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 현재의 미래창조과학부는 어떤 형태로든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과거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를 부활하는 방안부터 기존 부처를 분리 개편하는 방안까지 다양한 해법이 모색되고 있다. 이러한 고민은 결국 현재 정부 조직으로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적 흐름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담겨 있다. 정부 조직은 물론이고 관련 법과 제도 역시 대대적인 정비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이 때문이다.◆경제 규제 합리화, 정부도 공감=재계의 고민은 정부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산업 육성의 대원칙을 밝히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관련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이중삼중의 규제 장치가 그대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드론의 경우 성장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산업으로 손꼽히지만, 관련 업체들은 전파법, 항공법 등 중복 규제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등 경쟁국은 꾸준한 기술력 확보는 물론이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발전하고 있는데 한국 기업은 규제에 발목이 잡혀 힘겹게 경쟁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실적인 제약은 4차 산업혁명의 유연한 대응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정부의 역할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 주도로 대응전략을 고민하기보다 시장과 기업이 시대 변화에 맞게 유연하게 대응하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정부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는 점은 인식하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1일 중장기전략위원회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경제ㆍ사회적 영향은 이전의 산업혁명보다 파괴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민간이 중심이 돼 유연한 대응을 하고 정부는 경제 전반의 구조개혁과 규제 합리화를 통해 뒷받침하겠다."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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