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많이 회자된 단어가 '법 미꾸라지'다. 못된 짓이란 짓은 다 저질러 놓고서도 법의 미비나 허점을 이용하여 사법처리를 면한 무리들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며 지역감정을 조장하거나 국정농단의 주역인 최순실을 '전혀 모른다'고 발뺌한 이들이 이 범주에 속할 것이다. 이들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역사의식이 천박한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하여도, 대통령은 도대체 어떤 생각과 기준으로 이들을 중용했는가. 이해가 안 된다. '법 미꾸라지'의 유형이 세금에도 있다. '세금 미꾸라지'다. 대다수 성실한 납세자들은 군말 없이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데, 이들은 소득과 재산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세법의 허점을 악용하여 얄밉게도 세금을 잘도 피한다. 세법을 더 촘촘히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경제현상이 워낙 복잡한데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어서 이를 모두 세법에 담기는 역부족이다. 세금 미꾸라지와 그들 도우미(변호사, 회계사 등 세무조력인)가 바로 이 빈 공간에 기생한다. 이들의 주된 행태를 살펴보자.첫째, 주식 명의신탁을 이용한다. 명의신탁이란 자기 주식을 다른 사람 명의로 해두는 것을 뜻한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서다. 현행 세법상 상장법인 주식을 양도할 경우 대주주(해당법인 발행주식의 1% 이상 또는 시가총액 25억원 이상을 소유한 자)는 납세 의무가 있다. 대주주에 해당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주식을 분산소유 하는 것이다. 과세관청이 이를 포착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주식실명법(가칭)'을 제정하여, 주식 명의신탁 거래 자체가 무효라는 규정을 두어야 한다. 부동산실명법에서는 부동산명의신탁 거래를 무효로 하고 있다. 그래야만 탈세방지가 된다.둘째, 거주 국가를 한국에서 조세피난처로 옮긴다. 우리나라 세법상 거주자(국내에 주소나 183일 이상 거소를 둔 자)는 한국 소득과 외국 소득 모두에 대해서 누진세율로 과세하지만, 조세피난처로 주소 등을 옮겨서 비거주자가 될 경우, 우리나라는 그들의 외국소득을 과세할 수 없다. 반면 조세피난처에서는 세금이 아예 없거나 매우 낮은 세율로만 과세된다. 그러나 헌법 상 거주이전의 자유가 보장되므로 주소를 조세피난처로 옮기는 것 자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이런 법의 허점을 세금 미꾸라지와 그들 도우미가 교묘하게 파고들어서 국부(國富)를 부당하게 해외로 유출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 세무공무원 실력으로 이들 세금 미꾸라지들을 당해내기 어렵다. 따라서 세법상 거주자 판정기준을 주소에서 국적으로 변경해야 한다. 미국이 이렇게 하고 있다. (이 경우 조세피난처로 주소를 옮겨도 국적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한국 거주자가 되고 한국 세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이게 합리적이다.셋째, 전직 고위 관료 출신 도우미를 이용한다. 이들 중 극히 일부는 세무조사 과정에서 부당하게 세금을 줄이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들은 퇴직일부터 3년간 일정 규모 이상의 법무법인, 회계법인, 세무법인에는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한 퇴직공직자 취업제한 조항을 적용 받는다(공직자윤리법 제17조). 하지만 일부 공직자들은, 공직자윤리법을 피하기 위해, 취업제한 대상 기업들이 만들어 놓은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에 취업은 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취업제한 대상 기업의 일을 하면서 그들의 도우미가 된다. 어떻게 하여야 할까? 서로 손뼉이 마주치니 뾰쪽한 수가 없다. 김영란법 적용 강화와 이들의 행태가 조세범처벌법 상'성실신고 방해 행위'에 해당되는지를 판단하여 엄하게 처벌을 하여야 한다. 그래야 사리에 맞다.세무조력인의 정상적인 활동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탈세를 조장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돈 있으면 죄 짓고도 처벌받지 않는 것(유전무죄 무전유죄ㆍ有錢無罪 無錢有罪)으로도 모자라 돈만 많으면 세금도 안내는 식(유전무세 무전유세ㆍ有錢無稅 無錢有稅)이어선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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