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았지만 마당이 있는 주택에 몇 해 전 둥지를 틀었다. 서울의 끄트머리 동네, 아파트 개발의 바람 속에서도 존치된 한가로운 마을이다. 쥐뿔도 없으면서 ‘마당 있는 집’이라는 로망을 안고 사는 걸 한탄스러워 하다가 운 좋게 값싼 전셋집을 구한 것이다. 매일 풀밭과 나무를 보며 사니까 주말이 돼도 굳이 공원이나 야외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도시’를 찾아가곤 한다. 계절의 변화는 오롯이 스며든다. 마당의 눈이 녹고 누르스름한 자취가 드러나는가 싶다가 햇살이 따사로워짐에 따라 서둘러 풀들이 피어오른다. 개나리가 피고 마침내 목련이 팝콘처럼 봉오리를 터뜨리면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다가 또 어떨 때는 아득한 안온함에 젖기도 한다. 목련은 우아함의 극치이며 아름다움은 찰나여서 더 고고하다는 걸 제 몸 바쳐 입증해내곤 한다. 목련이 피어 있는 동안은 왠지 조마조마하다. 마치 짧은 청춘의 불안한 찬란함을 보는 듯 하다. 철쭉이 피면 이제 느긋하게 봄내음을 즐기면 된다. 과장하지 않고 익숙한 아름다움으로 오래 머물러 줘서 고맙다. 이제는 횟수가 줄었지만 이사 온 첫 해에는 툭 하면 숯불을 피웠다. 손님이 찾아오거나, 혹 반찬이 마땅치 않다고 해도 그저 “불 피우자”고 했다. 고기는 프라이팬이 아니라 석쇠에 올려지는 게 상례가 됐다. 물론 요즘은 좀 뜸해지긴 했다. 마당 한 켠에선 나름 텃밭 시늉을 내보려 했다. 무지하고 게으른 주인이지만 상추나 깻잎은 심어놓으면 알아서 잘 자라는 편이었다. 그러다 지난해에는 몸에 좋다는 양배추를 심으려 모종을 사러 갔다. 봄철 모종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욕심만 많아서 두 판, 그러니까 50여개의 모종을 심었다. 설마 엉뚱한 모종을 줬으리라고야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심어놓고 한참을 기다려도 당최 저게 양배추 꼴이 될 성 싶지가 않았다. 결국 케일 모종으로 밝혀졌다! 쓴 맛의 케일을 먹는 일은 가끔이었다. 우리 가족보다 벌레들이 더 많이 먹어치웠다. 모종 가게에 대한 원망만큼이나 스스로 무안했다. 와이프는 비웃었다. 올해는 요긴한 모종을 정확히 따져서 심고 정성을 들여 가꿔볼 요량이다. 원하는 것을 심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전혀 다른 작물이 올라오는 황당함을 적잖은 국민들도 느꼈을 것 같다. 일단 뿌리째 뽑아내고, 다시 잘 보고 심어야 하겠다. 엉뚱한 뿌리는 철저히 없애야 다시 엉망이 되지 않을게다. 이 나라는 시행착오를 거쳐 다시 성숙의 길을 갈 것으로 믿는다. 이 봄이, 전혀 다른 봄이 되길 바란다. 예감은 나쁘지 않다. 박철응 금융부 차장 her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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