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키가 작고불면증이 좀 있고담배는 하루 반 갑아무 일 없이 빈둥대는 것을 좋아합니다흰 종이 구겨지는 소리와갑자기 유리창을 때리는 빗방울속에서 펼쳐지는 날개,어떤 꽃을 피워야 할지 망설이는나뭇가지의 떨림을 보는 것도 좋아하지요우연히 생겨나서우연히 만난수많은 별들, 수많은 사람들,누구나 혼자지만아무도 고독하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과아침마다 눈이 떠지고어제보다 찬 공기를 숨 쉬는 일어린 딸이 커서 처녀가 되는 일이기적의 일부란 것을 조금은 알고 있답니다그래서 밥을 먹을 때마다하늘을 볼 때마다부끄럽고 미안하고 황홀해서부서지는 햇빛이나 먼지 속으로 달아나고 싶어요한낮에도 발가벗고 춤을 추고 싶어요
■ 나도 그렇다. 언젠가부터 자꾸 "부끄럽고 미안하고 황홀"하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그런다. 왜 그런지 몰랐는데 이 시를 읽고 나니까 좀 알겠다. 아니 실은 나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인이 적어 둔 "기적"이란 단어에 슬쩍 기대어 보고 싶다. 별일 아니지 않은가, "아침마다 눈이 떠"진다는 것. 그런데 그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 기적에 더해 어제와 다른 공기를 숨 쉴 수 있고, "어린 딸"이 그리고 아들이 하루만큼씩 꼬박꼬박 자라고, "아무도 고독하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이 모든 게 또한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그래서다. 내게 주어진 이 "기적"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하기만 하다. 오늘은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밥을 먹을 때마다" "하늘을 볼 때마다" "기적"을 맞이할 줄 아는 사람, 그리하여 그 자신이 "기적"인 사람을 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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