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음란물 1호 '춘몽', 여배우 뒤태 노출사건 보니…

1965년작 6초 가량의 컷을 감독이 검열전 삭제했으나 검찰이 귀신같이 찾아내 징역구형

유현목 감독은 한 강연에서 '괴뢰군(인민군)을 인형으로만 설정하는 것이 반공은 아니다'는 취지로 표현의 자유를 반공보다 우위에 둔 발언을 한 것을 기화로 검찰로부터 반공죄와 음란물 제조혐의로 기소되기에 이른다. 사진 = 영화 [춘몽] 스틸컷

[아시아경제 디지털뉴스본부 김희윤 기자]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실행 혐의로 구속기소 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 <다이빙벨>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자 다각적인 상영방해와 함께 이후 문체부와 영진위가 집행하는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 삭감을 진두지휘하며 '철저하게' 블랙리스트를 관리했다.헌법 22조가 보장한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는 조항은 국정농단 세력에게는 죽은 법령이나 다름없었고, 예술계 안팎으로 '서슬 퍼런 검열'의 귀환을 규탄하며 창작의 자유에 대한 성토가 이어진 가운데, <다이빙벨> 상영 당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은 "다이빙벨을 비롯한 문화예술계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하라"였다.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내용을 창작하는 예술가를 단숨에 '좌파'로 규정하고 '투쟁대상'으로 간주한 것.정권의 예술계 탄압은 군사정권 당시 자행된 검열의 역사가 곧 증명하고 있는 가운데, 음란물 제조 혐의로 영화계 최초로 형사처벌을 받은 1965년 영화 <춘몽>은 반세기 전 대한민국에도 횡행했던 블랙리스트의 억울한 희생양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유현목 감독은 결국 음화제조에 대해 사실상의 유죄 판결을 받는다. 사진 =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은막의 자유를 허하라충무로의 대표적 작가주의 감독으로 손꼽는 유현목 감독은 1965년 한 세미나에 참석, ‘은막의 자유’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최고의 예술은 최고의 정치와 통한다는 말이 있다. 괴뢰군을 인형으로만 설정하고 생명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 반공이라면 언제까지나 영화예술의 차원을 높여갈 수는 없을 것이다”며 정부의 검열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뒤 “영화예술의 차원 높은 표현의 수단을 빌지 않고 (반공을 국시로 하는 나라로서) 국시를 최고로 주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발언했는데, 서울 지검은 그를 ‘반공이 대한민국 국시임을 부인한 감독’으로 규정, 반공법 위반으로 입건한다.문제는 그가 입건 된 1965년 7월 13일 당시 상영 중이었던 그의 연출작 <춘몽>까지 번졌는데, 검찰은 그를 반공법 위반과 함께 영화 <춘몽>의 특정 장면을 문제 삼아 음화제조(음란물 제작)죄로 기소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노출과 실험적 형식으로 주목받았던 영화 [춘몽]은 결국 영화 최초의 음란물 형사처벌을 받은 작품으로 기록되고 말았다. 사진 = 영화 [춘몽] 스틸컷

6초의 노출, 1년 6개월의 징역문제가 된 영화 속 장면은 여배우가 꿈속에서 도망치는 장면에 뒤태가 노출된 6초가량의 컷으로 촬영 당시 배우는 신체 앞부분을 모두 가린 뒤 촬영에 임했고, 해당 장면은 노출에 대해 엄격한 당시 풍토를 고려한 유현목 감독 본인이 결국 검열 전에 자진해서 삭제했으나 신출귀몰한 검찰은 검열관조차 보지 못한 필름 속 촬영장 상황을 낱낱이 열거하며 그에게 징역 1년 6개월 및 자격정지 1년 6개월의 유죄를 구형했다. 재판부는 유 감독에 반공법에 대해서는 무죄, 음화제조죄에 대해서는 유죄취지로 벌금 3만 원을 선고하며 다음과 같은 취지를 밝힌다.<div class="break_mod">“이 영화는 상대방 여자에게 폭행, 린치, 전기고문 등 가혹한 행위를 하여 고통을 받고 신음하는 현상을 보고 또 이와 같은 행위를 당하고 남녀가 서로 성적인 자극과 만족을 얻는 것을 그린 후 이와 같은 상황에서 변태성욕자에게 기어 완전 나체로 달아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므로 우리 사회의 건전한 양식에 비추어 정상인에게 이상한 성적 자극을 주고 수치, 혐오의 감정을 일으키게 함에 족하다고 인정된다. 헌법에서 보장된 학문·예술 및 표현의 자유도 헌법 제32조가 정한 공공복리에 의하여 제한되고 이 한도 내에서만 허용되는 것이므로 이 범위를 벗어난 권리행위는 권리 남용에 해당하여 헌법의 보장을 받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헌법 32조의 공공복리가 22조의 예술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재판부의 논리는 당시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헌법이 보장하는 예술의 자유 영역을 위축시켰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항소심에서도 유현목 감독은 끝내 선고유예판결을 받았다. 결국엔 ‘유죄’라는 결론이었다.<춘몽>의 음란물 유죄 판결은 당시 반공법과 관련 위험한 발언을 쏟아내는 유현목 감독에 대한 경고 차원에서 이뤄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지 규제였으나, <다이빙벨> 상영방해와 함께 불거진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이제 표현 이전의 창작영역에 대해서까지 국가가 규제에 나서겠다는 전근대적 선언과 같았다. 정치적 야심에 의한 프로파간다 논리는 영화의 눈부신 발전에 공조했지만 결국 프로파간다 자체가 목적이 된 영화는 ‘국책영화’, ‘선전물’ 등의 취급을 받으며 대중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반세기 전 사건이 왠지 모르게 현재의 사건에 비해 진보적으로 읽히는 까닭은 무엇일까. 디지털뉴스본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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