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국회에서 가진 긴급 기자회견에서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면서 목이 타는 듯 물을 마시고 있다.
[아시아경제 황진영 기자] "부의 양극화와 이념, 지역, 세대간 갈등을 끝내야 한다. 국민 대통합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1월 12일 인천공항, 귀국 기자회견) "모든 정당과 정파 대표들로 개헌협의체를 구성할 것과, 이 협의체를 중심으로 대선 전 개헌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1월 31일, 마포 캠프 사무실 기자간담회) “제가 주도하여 정치교체 이루고 국가 통합 이루려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2월 1일, 국회 정론관 긴급 기자회견) 반기문 전 UN(유엔) 사무총장이 지난달 12일 귀국한 뒤 1일 대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하기까지 20일간의 행보는 좌충우돌과 논란의 연속이었다. 귀국 전 유엔 사무총장 퇴임을 앞두고 "대한민국을 위해 온몸을 불사르겠다"며 사실상 대권 출마를 선언한 반 전 총장은 귀국 기자회견에서 "부의 양극화와 이념, 지역, 세대간 갈등을 끝내야 한다. 국민 대통합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며 대권 주자로서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10년간 한국을 떠나 한국 사정에 어두운 반 총장이 자잘한 실수를 연발하면서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귀국 직후 공항철도 인천공항역에서 프랑스산 생수를 집어 들었다가 보좌진의 제지로 국산 생수로 바꾼 것을 시작으로 지하철 티켓 무인발매기에 1만 원권 2장을 동시에 집어넣는 모습이 그대로 언론을 통해 노출되면서 '서민 코스프레'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16일에는 음성 꽃동네를 방문했다가 ‘턱받이 논란’이 불거졌고, 다음날에는 ‘반기문 퇴주잔 논란’이 인터넷을 달구었다. 이 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페이크 뉴스’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무차별 유통되면서 반 전 총장에 타격을 주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은 "정당이 없으니 돈, 세력, 경험이 부족해 아주 힘들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가, 기존 정당들로부터 "정당이 현금 인출기로 생각하느냐"는 비판을 받았다.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된 자신의 발언을 집요하게 묻는 기자를 지칭해 "나쁜 놈들"이라고 했다가 맹비난을 받았다. 자신을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지칭하는 등 애매한 정치 성향도 대권 행보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명박 정권 인사들이 주변에 포진하자 국민의당이 문을 내렸고, 그렇다고 보수층 지지자들의 마음을 얻지도 못했다. 귀국 전까지 여야 통틀어 선두였던 지지율은 귀국 하자마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게 역전됐다. 그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공산당만 아니면 따라 나서겠다"고 했던 새누리당의 충청권 의원들도 탈당을 저주했다. 설 연휴를 전후해 여야 인사들을 두루 만나면서 타개책을 모색하기도 했지만 이 마저도 빈손으로 끝났다. 반 전 총장은 31일 개헌협의체 구성을 제안하면서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냉담했다. 조기 대선의 변곡점이 될 수 있는 설날 밥상머리 여론에서도 반등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지지율은 더 하락했다. 1일 발표된 리서치앤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13.1%에 불과했다. 32.8%를 기록한 문 전 대표와의 지지율 격차가 20%포인트에 육박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끝낸 뒤 언제 결심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 오전”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결국 기대 보다 낮은 여론조사 결과가 고심하던 반 총장의 사퇴를 결심하게 만든 '스모킹 건'이 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황진영 기자 young@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정치부 황진영 기자 young@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