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카메라 든 손이 부끄럽지 않았으면

'아! 저 나무만 없다면 좋겠는데, 이런! 건물과 전봇대도 너무 걸려….' 여행취재를 다니다보면 이런 소리를 입버릇처럼 한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 속에는 없었으면 하는 것들이 참 많다. 가끔 사진 욕심에 '나뭇가지라도 치워볼까' 라는 헛된 생각이 들어 깜짝 놀라기도 여러 번이다. 그러기에 사진은 더하기가 아니라 하나하나 빼나가는 뺄셈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이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좋은 피사체를 만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기도 한다. 떼로 몰려와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에다 떡 하니 삼각대를 세워 두는 건 비일비재하다. 사람들이 렌즈 앞으로 지나가기라도 한다면 큰 소리를 친다. '상식이 없다, 구도가 망가졌다, 피사체를 방해했다' 등 주객이 전도된 꼴불견을 연출한다. 지난 21일 새벽 태백산에서 겪은 일이다. 영하 15도를 넘는 매서운 겨울날씨와 싸우며 천제단 아래 주목군락지에 당도했다. 그만 그곳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족히 50여명은 될 것 같은 '사진가'들이 주목을 둘러서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받쳐놓고 있었다. 눈 덮인 주목을 배경으로 일출을 담기 위해 오른 이들이다. 사진 한 장 찍자고 엄동설한 칼바람 몰아치는 산에서 해 뜨길 기다리는 모습에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일출을 기다리는 사진가들 사이에서 수시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미리 자리 잡은 이와 새로 들어온 이들 사이에서 자리싸움이 치열했다. 눈에 발자국을 남겼다, 방해 말고 비켜라 등 서로를 책망하는 소리도 들렸다. 그때 산을 오르든 등산객 랜턴불빛이 주목을 비추고 말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불을 꺼라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애먼 등산객은 주목 한 번 보려다 봉변을 당한 꼴이다. 분위기가 이러니 정작 일출을 보러 온 등산객들은 서슬 퍼런 사진가들에 놀라 주목 근처도 가보지 못하고 멀찌감치 물러선 채 머뭇거리기만 했다. 이뿐만이 아니였다. 사진가들 주변에는 텐트가 버젓이 설치되어 있었다. 텐트 안에선 버너를 사용해 끓인 라면냄새가 진동했다. 국립공원에서 야영과 취사 금지라는 안내문은 이들에겐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급기야 사단이 나고 말았다. 가스통에 불이 붙어 눈밭에서 불을 끄는 촌극도 벌어졌다. 그나마 겨울이라 빠른 조치가 가능했지만 생각만 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사진가들의 헛된 욕심은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다. 몇 해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금강송이 아름다워 사진을 찍는다는 한 사진가가 금강송을 무단으로 베어버려 비판을 받았다. 그것도 울진군 삼림보호구역 내 금강송 10여그루를 말이다. 잘린 금강송은 220년간 그 자리에 뿌리 내리고 있었다. 그 사진가는 자신이 찍고 싶은 금강송을 가린다는 이유로 그런 몰상식한 행동을 한 것이다. 이런 경우도 있다. 나뭇가지에 어린 새들이 앉아 있고 어미새가 먹이를 주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전문가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사진가가 새끼 다리에 접착제를 칠해 나뭇가지에 붙여 놓은 것이란 지적을 받아 논란이 일었다.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고, 남들과 다른 사진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야 왜 모르겠나. 그러나 그런 욕심이 금강송을 자르고 본드칠을 해서 어린 새를 붙이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욕심과 무례함으로 똘똘 뭉쳐있는 일부 사진가들 의식이 바뀌어야 할 때다. 이러다 카메라 들고 다니는 게 부끄러운 일이 될까 두렵다. 조용준 사진부장ㆍ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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