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 물의 기분/최문자

물을 삼킬 때목에 걸리는 알몸의 실체물의 기분을 안다단순히 흘러가는 게 아니라나의 이야기 속을 걸어간다시의 맨 처음으로 가는 느낌작고 부드러운 터치이건 이빨이 아니지녹을 것 다 녹이고녹지 않겠다는 것까지 다 녹이고눈을 감고누구에게 실컷 쏟아지려는 마음우리의 밑그림이 마르고 있었다"잊을 거야, 잊을 거야" 하면서이별은 단호하게 시작된다세차게 차 버릴 수 없는 발목으로어딘가를 헤엄쳐 간다비가 내리는 거리에서나는 상처를 가리고바지를 세 단씩 접으면서그래도 당신은 새털구름처럼 웃었다매번 물이 있어서당신은 그토록 우리를 지우는 사람우린 그런 물의 기분
 ■ "물의 기분", 그게 뭘까? 시인이 적어 둔 바에 따르자면, "시의 맨 처음으로 가는 느낌"이거나, "작고 부드러운 터치"이고, "녹지 않겠다는 것까지 다 녹이"는 것이며, "눈을 감고" "누구에게 실컷 쏟아지려는 마음"… 그런 거다. 그런데 그런 "느낌"이란, 그런 "터치"란, 그런 "마음"이란 대체 어떤 걸까? "시의 맨 처음으로 가는 느낌"을 통상적으로 번안하자면 '기원을 향한 열망'이라거나 '훼손되기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간절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긴 하지만 그런 번안이 애초의 저 "시의 맨 처음으로 가는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 줄 수 있을까? 그건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이다. 오로지 "시의 맨 처음으로 가는 느낌"이라고 적어야만 전해지는 어떤 느낌이라는 게 있다.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다만 그 단어들로써만, 그 단어들의 조합으로써만 얻을 수 있고 펼쳐 보일 수 있는 느낌과 마음이 있다. 시인은 최선을 다해 그 느낌과 마음을 적는 사람이고 독자는 그에 동참하려는 사람이다. 시를 쓰고 읽는다는 건 "누구에게 실컷 쏟아지려는 마음"이고 그런 마음을 문득 그러나 한없이 헤아려 보려는 것이다. 서로 "물의 기분"이 되어 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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