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민진 기자, 최일권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검찰 조사를 거부하면서 '국정농단 파문'을 수사 중인 검찰 수사가 차질을 빚게 됐다. 100만명의 촛불 민심, 진실 규명을 원하는 '95% 국민의 명령'을 정치적 계산과 시간 벌기 꼼수로 짓밟아 버린 것이다. 대통령은 임기 내내 '국가와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진박(진실한 친박)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현 시국에 대한 대통령의 안이하다 못해 무책임한 상황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대통령 조사 최소화하는 게 헌법정신에 부합, 서면 조사 바람직"= 박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15일 선임계를 낸 유영하 변호사(54ㆍ사법연수원 24기)는 "(대통령이) 임기 중 수사ㆍ재판을 받으면 국정마비, 국론 분열이 야기돼 원칙적으로 대통령에 대해서는 내란ㆍ외환죄가 아니면 조사가 불가하고, 하더라도 최소한으로 진행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두 번째 대국민 담화에서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각오이며, 특검 수사도 수용하겠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막상 검찰이 대면 조사 계획과 일정을 밝히자 변호인을 통해 사실상의 수용 불가 입장을 나타내면서 "서면 조사가 바람직하다"고 입장을 바꿨다. 유 변호사는 "검찰이 모든 의혹을 충분히 조사해서 사실 관계를 대부분 확정한 뒤 대통령을 조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도 했다. 국정마비와 국론 분열의 당사자는 모든 의혹의 몸통인 대통령이라는 국민의 상식과는 상황 인식에 큰 차이가 있는 셈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조사 시기는 검찰이 정하는 것이지 참고인이나 피의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고 응수했다.
◆"선의로 추진했던 일, 의혹이 사실로 단정되고 매도돼"= 이날 변호인의 기자회견 발언은 지난달 25일과 지난 4일 두 차례에 걸친 대통령 담화 내용을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유 변호사는 "선의로 추진했던 일이었고 그로 인해 긍정적 효과가 적지 않았음에도 이런 일 일어나 매우 가슴 아파하고 있다"며 "온갖 의혹이 사실로 단정되고 매도되는 것 같아 슬프고 가슴 아프지만 최선을 다해 진실을 밝힐 것을 다짐했다"고 대통령의 심경을 대변했다. 박 대통령의 첫 담화 이후 20일이 지났다. 그 사이 상상을 초월하는 의혹 상당 부분이 사실로 드러났고,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들은 속속 나오고 있다. 전 국민적인 실망과 분노가 극에 달했다. 변호인의 발언으로 볼 때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사건 초기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대통령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과 함께 "'제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로웠다"는 담화 내용은 "내가 이러려고 국민 했나"라는 집단적이고 국민적인 자괴감으로 분출되고 있다.
◆靑, 언론 보도 거부감…시간은 박 대통령 편?= 청와대는 검찰 수사 일정과 관련해 '연기' 혹은 '버티기'라는 언론 보도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16일 "일부 언론에서 청와대가 버틴다고 표현했는데, 그건 맞지 않는 얘기"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청와대가 주도권을 쥐고 가야 한다는 의지로 읽힌다. 박 대통령이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검찰이 '15일 혹은 16일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한 것은 그쪽의 일방적인 견해인 것이고, 변호인이 선임됐으니 일정을 앞으로 조율해 결정해야 한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다. 청와대의 강경한 태도는 검찰 조사 일정뿐 아니라 야권의 거취 결단 요구에 아랑곳 않는 모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선 후퇴'는 물론 '질서 있는 퇴진' 요구 등에 대해서도 '헌법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국회에서 국무총리 후보자를 합의해 추천하면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 박 대통령의 마지노선인 셈이다. 박 대통령이 야권과 검찰의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결국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겠느냐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도발 등 돌발 변수가 언제든 나올 수 있는 만큼 보수층 결집도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박 대통령의 지지율에 대해 "5% 지지율은 언제든 회복될 수 있는 숫자"라고 언급한 것도 청와대의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이번 주로 예상됐던 박 대통령의 세 번째 대국민 담화도 현재로써는 장담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의 추가 담화 가능성에 대해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4일 "모든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고 했고, 15일에는 "숙고하고 있다"고 했다가 16일에는 "아직 들은 바가 없다"고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다.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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