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수기자
박원순 서울시장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최순실 게이트' 대응 방향을 놓고 고민하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2일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을 촉구하며 '거리 정치'를 선언했다. 당장 이날 저녁부터 청계광장에서 벌어지는 촛불시위에 참가할 계획이다. ▲ 서울시장의 촛불시위, 사상 초유1000만 서울 시민의 민생과 시정을 돌봐야 할 현역 자치단체장이 현직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며 촛불시위에 나선 것은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다. 게다가 박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현 시국의 수습 대책을 놓고 여ㆍ야 모두와 거리를 뒀다. "오로지 국민을 믿고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며 전국 노동ㆍ시민ㆍ사회단체들이 만든 '비상시국회의'에 참가하겠다는 뜻밖의 선택을 했다. 진정한 '야인(野人)의 길'을 걷겠다는 것이다. 시 안팎에선 '모험', '무리수'라는 우려가 많다. 자칫 시정 차질ㆍ인명 사고라도 나면 "본연의 임무를 져버리고 정치에 골몰하다 사단이 났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 실제 서울시 공무원 내부에선 일단 시정에 충실히 임하되, 향후 정국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성명서 정치'만 해도 충분하다는 주장이 더 많다.▲ "새로운 시대 열 계기로 삼자"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시장이 이같은 선택을 한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현 시국에 대해 이른바 '1987년 체제'를 깨고 새로운 사회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박 시장의 '시대적 비전' 때문이라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단순히 정쟁이나 탄핵·하야 등 정치권 내부에서 끝낼 문제가 아니다. 해법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국민 참여를 전제로 근본적인 정치 혁신을 통해 진상규명ㆍ책임자 처벌을 넘어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ㆍ국가 시스템을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박 시장은 지난달 말 '나홀로 시국선언'을 통해 박 대통령 직접 사과 및 진실 고백, 별도 특검제 실시, 거국중립내각 구성과 함께 청와대·국정원·국회 등 권력기관의 국민 통제 강화 등 국가 시스템 개조의 필요성을 강조했었다. 박 시장 측 관계자는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 개각 사태를 보고 나니 책임있는 정치인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성명서를 준비한 것"이라며 "여야 3당과 시민사회가 다 같이 모여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사태를 수습해보자는 게 박 시장의 초지일관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의 국정농단, 민주주의 파괴 사태는 단순히 끝낼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를 바꾸는 계기로 삼아 국민권력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게 박 시장의 뜻"이라고 전했다.청계광장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규탄 촛불집회. 사진=박종일 기자
▲ '거리의 정치', 성공하려면?박 시장의 이같은 선택에 대해 "대선 후보 지지도에서 뒤쳐지고 지지 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던진 승부수"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박 시장 측은 "그런 것을 의식했다면 다른 방식을 선택했을 것이다. 오로지 국민들을 믿고 뜻을 따르겠다는 것"이라며 이를 일축했다. 박 시장 측은 또 개헌과의 연계 가능성에 대해서도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지 않느냐"고 부인했다.정치권에선 박 시장의 '거리 정치'가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세력화'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친정격인 시민사회의 호응과 동조, 정치 세력의 규합을 통해 실질적인 움직임과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시장 측은 이와 관련 지난달 말 이후 각계 원로 및 시민사회 출신 현역 정치인 등과 부지런히 접촉하면서 현 정국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형식으로 시민사회의 호응 및 정치 세력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이날 전국 10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돼 첫 회의를 연 '비상시국회의'는 향후 전국적 비상대책기구로 확대 개편될 예정이다. 박 시장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해 활동하게 될 지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 또 안정적인 민생 돌봄과 시정 운영도 필수다. 박 시장은 이와 관련 전날 오전 시 간부회의를 긴급 소집해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겨울나기 등 시민의 삶을 철저히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또 평상시엔 대내외 일정과 회의, 결재 등을 철저히 챙긴 후 일과 시간이 끝난 후에야 촛불 시위 등 정치적 일정을 소화한다는 방침이다. 야권 대선 후보 중 가장 먼저 '대통령 하야'와 '거리 정치'를 선택한 박원순 시장이 과연 혹독한 광야에 희망의 씨앗을 뿌릴 '백마를 탄 초인'이 될 것인지 주목된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