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도 정치경제부 차장
어느 평화로운 휴일 오전 느닷없이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불만에 가득찬 목소리였다. "도대체 취재를 어떻게 하셨느냐, 팩트(사실)가 틀렸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한 재선의원이었다. 전날 작성한 기사가 문제였다. 도대체 어떤 '팩트'가 틀렸는지 궁금해졌다.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대화는 이렇게 요약됐다. "(나는) 강성 친박(친박근혜)이 아니다"라는 반박이었다. "친박은 맞지만 강성이란 표현이 틀렸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소신의 정치를 해왔고, 이렇게 언급된 것 자체가 불편하다"는 얘기였다.여당의 국정감사 보이콧이 논란이 되면서 강경 친박이 여론의 뭇매를 맞던 때였다. 그는 홀로 국감 복귀를 선언한 같은 당 김영우 국방위원장을 향해 "자기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일탈을 했다"며 징계를 주장한 대표적 인사였다. 일부 언론은 그를 가리켜 행동대원으로 묘사했고, '강경 3인방'에 꼽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멘토그룹인 7인회 멤버의 보좌진으로 정계에 입문한 만큼 당연한 결과였다. 그의 이름 석자를 아예 기사에서 빼기로 했다. 소모전을 벌이는 시간이 아깝기도 했지만, 불과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정국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당의 대선후보가 결정되고 무게중심이 이동하면 그는 '친박'이란 꼬리표까지 부담스워러할 모양새였다.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요즘, 우려는 곳곳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가 연일 회자되고, 최씨와 관련된 의혹이 꼬리를 물면서 '특별검사제 정국'이 도래한 탓이다. 친박은 벌써부터 몸을 사리고 있다. 자칫 '최순실 게이트'란 회오리에 휩쓸려 정치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작용한 듯 보인다.분노한 청년들의 시국선언이 곳곳에서 쏟아지면서 회오리는 거대한 태풍으로 변모했다. "대통령 퇴진이 진정한 사과"라거나 "뭘 해도 최순실이 시킨 걸로 보인다"며 하야나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도 열리고 있다. 국민들의 허탈감은 극에 이르렀다. 함께 정권을 창출하고 여당을 이끌어온 친박을 생각하면, 성토의 대상이 된 박 대통령이 안쓰러울 정도다. 60명 넘는 친박 현역의원 가운데 누구 하나 대신 나서 책임감 있게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2명의 대통령을 모셨다"며 국민의 분노가 팽배해 있지만, 박근혜정부와 공동 운명체인 친박은 침묵하면 안 된다. 인적 쇄신이든, 국정 조사든 고언을 아끼지 말아야 할 때다. 한 여당 의원이 국무위원과 청와대 비서진을 향해 퍼부은 날선 질의가 떠오른다. "우리가 이 정권을 탄생시켰으니, 역사적 책임이 있다. '이제 대통령과 협력하지 못할 때가 왔다'는 충언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다시 되묻고 싶다. "당신은 친박입니까." 오상도 정경부 차장sd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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