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도기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상대책위 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4년 가까이 지나 다시 대선 정국이 무르익은 가운데 당시 토론의 두 주인공이 만났다. 23일 오전 서울 정동의 한 식당에서 조찬 회동을 가진 이들은 표면적으론 담론 수준의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내년 대선을 앞둔 포석이 담겨 있다. 정치권의 대표적 '책사'로 꼽히는 두 거물은 그동안 변화를 겪었다. 김종인은 지난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아,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달 전대 이후 2선으로 물러난 상태다. 환경부 장관 출신의 윤여준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도운 데 이어 지난 총선에선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를 도와 창당 작업에 일조했다. 지금은 여권의 잠룡인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날 만남에서 김 전 대표는 윤 전 장관에게 조만간 출범하는 '경제민주화포럼' 합류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포럼은 김 전 대표가 평생 일궈온 경제민주화란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한 연구모임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잠룡들의 싱크탱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김종인 더민주 전 비대위 대표를 만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반면 윤 전 장관은 자신이 멘토 역할을 맡은 남 지사에 대한 우회적 지지를 요청한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남 지사는 김 전 대표를 자신의 캠프에 모시기 위해 수차례 접촉했다고 정치권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날 김 전 대표와 윤 전 장관의 만남에 이목이 집중됐던 이유다. 이들은 미리 내년 대선 판을 그려봤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더민주 당적을 유지한 김 전 대표는 쉽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주류인 친문(친문재인)과 불편한 관계이지만, 자칫 '철새'란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 등 보수ㆍ진보 진영을 오간 그는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새천년민주당,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등 이름을 올린 당적만 5곳에 이른다. 이와 관련 김 전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내가 여야를 넘나들면서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데, 이는 (여야 모두) 한국사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데 공감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개헌 논의를 포함해 위기 극복을 위한 가장 적절한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 전 대표는 당분간 특정 대선주자나 그룹을 지지하는 행보는 걷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내년 대선과 관련해 확실하게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또 "기껏해야 '야당 단일화'나 생각하고 모이는 경우가 많다. 한국사회의 당면 문제 타개를 논의하자는 것이지, 특정인이나 정당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들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은 최근 불붙은 '브레인' 모시기 경쟁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해석이다. 어느 진영이나 후보에 힘을 보태느냐에 따라 향후 대선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전 대표는 이와 관련, 회동 직후 "제3지대라는 말은 안 쓴다. 비패권지대를 이야기한다"면서 안철수 전 대표가 언급해온 제3지대론과 선을 그었다. 김 전 대표 등이 앞으로 중간지대에서 중도세력을 통합하는 고리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여당 관계자는 "두 거물은 보수ㆍ진보를 아울러 잠룡들의 이합집산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이날 조찬에 함께 했던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모임 뒤 기자들과 만나 "김 전 대표는 비패권지대라고 했고, 나는 '정상지대'라고 했다"면서 "양극단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논의했다"고 공개했다. 정 전 의장은 최근 싱크탱크인 '새 한국의 비전'을 출범시켜 정계개편에 시동을 걸고 있다. 1시간 가량 이어진 조찬은 김택환 전 경기대 교수의 주도로 만들어진 자리로 알려졌다. 오상도 기자 sdo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