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집단마을 '은평구 기자촌' 아시나요?

60년대 기자들 주거마련을 위해 언론인 거주 마을인 ‘기자촌’ 조성...기자촌에서 싹튼 문학정신으로 ‘많은 문인들을 배출’... 6월 2일 기자촌 마을 건립 계획 수립 50주년을 맞아 ‘기자촌 홈커밍데이’ 행사 개최...기자촌을 미래통일시대를 대비한 문학테마파크로 조성

[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 '기자촌(村)' 은 은평구 진관외동 175번지 일대에 있던 마을로 기자들의 집단거주 마을인 데서 명칭이 유래됐다.1960년대는 발전과 도약의 시기라고는 하나 당시 기자들 월급으로는 최저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그 당시 정부는 이촌동과 현재 기자촌 터 두 곳을 제시했으나 한국기자협회에서 가격도 저렴하고 택지도 넓은 진관외리를 선택했다.1969년11월 첫 입주를 시작, 1974년3월 분양이 완료, 입주 초기에는 420여 세대가 분양을 받았다.또 독립유공자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기자촌 아래쪽에는 ‘광복촌’을 조성했다.(광복촌 27여 세대)기자촌은 북한산 바로 아래 가파른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름 장마에는 비가 들이치고 겨울에는 난방시설의 문제로 사람이 살기에 어려웠다. 외딴섬 상태의 기자촌, 초창기 기자촌은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 하루에 한 번씩 트럭으로 물을 실어오고, 대중교통 수단이 전무해 20여 분간 논길을 걸어 구파발로 나가야만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당시 직장에서 퇴근하면 집에 돌아와 우물을 파야 했고, 큰 비가 내리면 축대가 무너질까봐 밤잠을 설쳤다. 그러나 언론인들은 기자촌을 새로운 도약의 터전으로 삼고, 그 환경 속에서 소박한 즐거움을 찾고자 했다.퇴근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주친 경쟁 언론사 동료들과 기자촌 주변의 대포집에서 주고받던 탁주 한 사발, 마당 한 켠에 심었던 장미 덩굴이 온 집안을 휘감던 화사한 봄날. 아이들에게 동네는 천혜의 놀이터였으며, 어른들은 북한산 사계를 벗 삼아 소일했다. 총각 기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인생의 황금기를 그렇게 꽃 피웠다. ‘살맛나는 새로운 터전으로 탈바꿈하자!’ 는 의식이 공동체가 되는데 일조한 것이다.

기자촌 전경

그들은 입주자 협의회에서 더 규모를 키운 단체를 조직하면서 함께 시대를 토론하곤 했다. ◆기자촌에 싹튼 문학정신으로 많은 기자출신 문인들을 배출기자촌의 형성된 60년대부터 80년대 까지 우리나라는 격변의 시간을 보냈다. 해방이후 1970년대에는 배고픔의 시간을 이겨내고 경제발전을 이루어 냈으나 산업화로 인한 폐해로 공동체가 파괴되고 계층간의 불평등성과 인간 소외 현상 등이 나타났다. 또 1980년대에는 민주화에 대해 사회적 열망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때였다. 이런 격변 시기에서 기자촌은 시대의식이 자라는 공간이었고, 문학적 소양이 싹트는 토양이었다.당대 내로라하는 언론인들이 이곳을 거쳤다. 안병훈 전 조선일보 부사장, 고흥길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 천상기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오전식 전 경향신문 정치부장, 이종윤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한영탁 전 세계일보 논설위원, 정용쇠 전 현대경제 편집국장, 조성하 전 한국일보 편집위원, 이청수 전 KBS보도국장, 강성구 전 MBC 보도국장, 강승훈 전 대한일보 편집국장, 신현구 전 한국일보 편집위원, 이경재 전 방송통신위원장, 조덕일 전 동아일보 교열부장, 함정훈 전 서울신문 편집국장, 황대연 전 일본경제신문 서울지국 국장, 이학주 한국경제신문 편집부장, 송복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그리고 기자촌의 언론인들은 빼어난 자연경관이 제공해주는 문학적 영감을 밑거름 삼아 많은 문학작품을 창작, 한국문단의 토질을 더욱 비옥하게 만들었다.기자촌을 중심으로 은평구에 거주했던 기자출신 문인으로는 이흥우(전 조선일보 기자, '플라타너스의 어록'), 이남규(전 조선일보 기자, '내 사랑 카사사기'), 안태성(전 중앙일보 기자 '해바라기'), 김광협(전 동아일보 기자. '황소와 탱크'), 황명길(전 동아일보 기자, '요일연습'), 이원두(전 경향신문 기자, '찬란한 음모', 임준열(전 경향신문 기자, '분단시대의 문학'), 구종서(전 대한일보 기자, '대칭기스칸'), 최성규(전 부산일보 기자, '나운규의 일생') 등이 있다.또 김시철(전 자유문학 편집장, 대표작 '조용한 무제', 김지향(전 세대 편집부 기자, 대표작 '사랑 그 낡지 않는 이름에게'), 박기원(전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 대표작 '귀향'), 박성룡(전 한국일보 기자, 대표작 '풀잎'), 박연희(전 동아일보 문화부 차장, 대표작 '삼팔선'), 박용숙(전 자유문학 편집장, 대표작 '대미록'), 서기원(전 KBS사장, 전 서울신문 사장, 대표작 '암사지도') 등 20여명은 문단경력 20년 이상, 은평구 거주 15년 이상 등의 까다로운 조건을 가진 '은평클럽'회원이기도 했다.

기자촌 옛 전경

이외도 김훈(전 한국일보, 국민일보, 한겨레신문. 대표작 '칼의 노래', '남한산성'), 김광주(전 경향신문 문화부장, 대표작 '정협지'), 박범신(전 한국방송공사 이사, 대표작 '은교'), 이유경(전 조선일보 기자, 대표작 '밀알들의 영가'), 장용학(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대표작 '원형의 전설]) 등 많은 언론출신 문인들이 있었다.그러나 점차 입주민이 감소, 1990년대 후반 퇴직 언론인들이 중심을 이루다가 2000년대가 돼 44가구 정도만 남게 됐다.이후 2000년대 뉴타운 사업이 시작됐을 때 기자촌은 그린벨트지역이라 제외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정비구역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개발 이익을 기대한 주민들이 기자촌을 뉴타운지역에 포함시켜달라며 서울시에 민원을 제기, 결국 2006년 은평뉴타운 건립에 따라 철거돼 현재는 공원부지로 지명(地名)만 남아있다.기자촌이라는 공간은 사라졌지만 정신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다. 기자촌은 전 세계 유례 없는 언론인들의 집단촌에서 시작,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산업화와 민주화로 대변되는 격변의 70~80년대, 보수와 진보의 격론과 담론의 장었고 시대의 나침반이 되고 촛불이 됐던 ‘기자촌’의 역사와 정신을 보존하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은평구는 6월2일 '기자촌마을 건립계획 수립 50주년'을 맞아 ‘홈커밍데이(homecoming Day)’ 행사를 개최한다. 또 앞으로 언론(기자) 기념관을 세워 기자촌의 시대정신과 그곳에서 피어난 문학작품 등을 보관·전시할 계획이다. ◆기자촌 마을 건립 50주년 기념 홈커밍데이 홈커밍데이(homecoming Day)는 미국에서 시작된 행사로 자기가 졸업한 고등학교를 졸업 30년 되는 해에 기족들을 동반하고 모교를 방문, 후배들과 만나는 축제이다.은평구는 기자촌 건립 계획 수립 50주년을 맞아 당시 기자촌에 거주했던 원로기자 어르신들을 초청, 홈커밍데이(homecoming Day) 행사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었던 언론인 집단 마을, 잊혀진 기자촌을 다시 살리기 위한 마음으로 추진됐다.과거 기자촌에서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축의 시대담론을 펼쳤던 원로기자들을 한자리에 함께 초청, 기자촌의 역사적 의의와 정신을 되살리고 앞으로의 기자촌의 모습,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 같이 고민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

기자촌 옛 전경

주요 행사로 기자촌 조성 당시 입주자 명단과 기자촌의 유래, 연혁을 새긴 표지석을 설치, ‘기자촌’의 지명을 영구적으로 보존, 기자촌 사진전을 개최, 기자촌 기자촌 착공식과 70년대부터 2000년대 까지 기자촌 실생활 및 사진(국가 및 서울기록원, 개인보관 자료 등)을 연대별로 구분· 전시회를 개최, 당시 기자촌의 모습을 회상하는 시간을 갖는다.사진전 후에는 천년고찰 진관사로 이동, 오찬 간담회(사찰음식)를 갖는다. ◆기자촌을 미래통일시대를 대비한 문학테마파크로 조성기자촌은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공원 부지로 남아있지만 기자들을 비롯한 문인, 정치인들도 거주했던 곳으로 한국 근대문학을 대표하기 좋은 곳이다.또 통일한국의 중심이라는 지리적 상징성과 함께 동아시아의 문학 중심지로서 분단문학의 가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이데올로기로 나누어진 남과 북을 하나로 연결할 수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지역이다. 특히 분단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소설가 이호철씨는 은평구 불광동에 50년간 거주하며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아울러 기자촌 주변은 수많은 내방객이 찾는 북한산과 그 산을 중심으로 이어진 둘레길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 자리 잡은 한옥마을, 진관사, 삼천사 등 수많은 문화유산이 어우러진 지역으로 세종은 1442년 기자촌 인근 진관사에 '사가독서당(賜暇讀書堂)'을 세우고 성삼문, 신숙주, 박팽년, 이개를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의 독서당에서 학문 연구에 전념하도록 해 한글창제에도 큰 기여를 했다.(근거 : 동국여지비고, 동환록)은평구는 기자촌 옆에 한옥마을(156가구) 및 천년고찰 진관사 템플스테이, 은평역사한옥박물관, 너나들이 관광센터, 삼각산미술관, 한옥전망대, 천상병 이외수 중광스님 작품을 한데 모은 셋이서 문학관, 북한산과 둘레길 등을 한국문화가 어우러진 '韓문화체험특구' 지역으로 2015년 4월에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지정 받은바 있다.은평구는 더 나아가 옛 기자촌 터전에 국립한국문학관을 유치, 기자촌의 문학적 정신을 잇고 한국문학관 바로 옆 4만5000㎡ 부지에 언론(기자) 기념관, 문인 및 명인 마을 등 언론·문학인을 위한 문학테마파크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주요 사료를 번역한 한국고전번역원이 2017년까지 현재의 구기동에서 기자촌 인근으로 이전할 계획, 불광동에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다문화박물관도 기자촌으로 이전, 기독기념관도 건립할 계획이다. 또 옛 질병관리본부인 서울혁신파크에는 현재 서울기록원이 건립되고 있다.김우영 은평구청장은 “문학의 요람, 통일문학의 중심지,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역사 및 문화가 깃든 ‘기자촌’을 문학의 중심지로 발돋음 하기 위해 한국문학관을 유치하려는 것”이라며 “근대 문학의 토양이 됐던 기자촌을 '한국문학의 메카'로 조성, 기자촌이 갖고 있었던 정신적·문학적 뿌리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박종일 기자 drea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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