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재는 왜 동료 향해 불 질렀나

국내 방화범 1순위는 4050男…복수·빈곤·보험금이 '불지름신'?

사진 = KBS TV문학관 '광염소나타' 스틸 컷

“저는 사면을 한번 살펴보고, 그 낟가리에 달려가서 불을 그어서 놓았습니다. 불길은 벌써 하늘을 찌를 듯이 일어났습니다. 왁, 왁, 꺄, 꺄, 사람들이 부르짖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저는 다시 그곳까지 가서, 그 무서운 불길에 날아 올라가는 볏짚이며, 그 낟가리에 연달아 있는 집을 헐어 내는 광경을 구경하다가 문득 흥분되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빼어난 재주를 갖고도 빈곤으로 인해 뜻을 펼칠 수 없었던 한 음악가가 도심에서 방화를 저지른다. 불을 한 번 지를 때마다 곡이 하나씩 써지는데 그 완성도가 기가 막힐 정도, 이를 지켜본 그의 후원자는 죄를 범해야 명곡을 쓰는 그를 용서해야 할지 묻는다. 싸이코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이 이야기는 1929년 발표된 김동인의 ‘광염 소나타’의 일부분으로 방화와 범죄를 통해 예술적 천재성을 발휘하는 광기 어린 예술가를 그린 작품이다.

숭례문 화재현장 / 문화재청 제공

왜 불 지르는가?광염 소나타의 주인공 백성수는 방화를 통해 느낀 희열로 작품을 완성한다. 현대사회에서의 방화는 발화자에게는 무엇을 선사하고, 우리에겐 무엇을 시사할까?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안겨준 이래로 인간은 불을 놓고 재원으로 활용하다가도 재난을 맞기 일쑤다. 최근에 등장한 방화범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달하기 위한 매개로 방화를 이용하고 있는 양상이다. 국보 1호 숭례문 방화사건의 용의자는 방화이유에 대해 택지개발에 따른 본인 소유의 토지 보상금액에 불만을 품어서라고 밝혀 전 국민의 공분을 샀다. 사회에 대한 불만을 방화로 표현한 것이다.국가화재정보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5년 한 해 동안 전국에 발생한 방화건수는 1,262건이고, 자연적 요인에 의한 것인지 방화인지 밝혀지지 않은 화재는 3,910건에 달했다. 검찰의 2015 범죄분석을 살펴보면 2014년도 방화 범죄자는 40대가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50대, 30대 순으로 중?노년층의 방화가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범행 시 방화범죄자의 정신 상태는 정상이 약 40%, 주취가 약 45%로 조사되었고, 검거된 방화범죄자의 87.1%는 남성이고 12.9%만이 여성으로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통계를 통해 선명하게 그려지는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 그는 왜 불을 지르게 된 것일까?

사진 = 불길에 휩싸인 주택

사회에 대한 불만표출지난 2월 18일 서울시 금천구청에선 한 남자가 흉기를 들고 구청 직원과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는 구청 바닥에 인화물질을 잔뜩 뿌려놓고 흉기를 휘두르며 언성을 높이다 직원들이 제지하려 다가가자 바닥에 불을 붙이고 도주했으나 30분 만에 경찰에 검거됐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선정되지 않아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불을 질렀다고 밝혔다.지난해 7월에는 성남시 분당구의 한 오피스텔 1층에서 60대 남성이 40대 여성에게 인화물질을 뿌리고 불을 붙여 사망에 이른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당시 계약직으로 근무 중이던 관리사무소와 재계약이 안 된 상황이었는데, 40대 여직원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소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인해 자신의 재계약이 불발된 것이라 생각하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단순한 험담과 추측만으로 동료를 살해한 엽기적 사건이었다.한편 칼을 갈고 복수의 방화에 나선 사례도 있다. 지난 2월 8일 부산시 사상구의 한 요양병원 주차장에서 70대 남성이 주차되어있던 이 병원 원장의 차량에 등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려다 실패하고 도주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4년 전 이 요양병원에서 함께 입원한 환자를 흉기로 찔러 3년 6개월 형을 받고 수감된 뒤 지난 6일 출소한 상태였다. 교도소에서 칼을 갈았을 그의 복수극은 준비한 인화물질이 등유였고, 등유는 발화점이 높아 쉽게 불이 붙지 않았던 탓에 실패로 막을 내렸다. 이 같은 중년 남성의 방화 뒤엔 사회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나이는 먹어가고, 가족관계는 단절되고, 사회에서 냉대받고, 원만한 소통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들이 느끼는 복합적 소외감과 내게는 해당 없는 사회적 혜택에 대한 불만 등이 다층적으로 얽혀 분노가 되고, 이 분노를 방화로 표출하는 사례가 줄을 잇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중년, 노년의 방화를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사진 = 방화 후 폐허가 된 주택 내부

먹고 살기 어려워서 중년의 방화가 사회에 대한 불만에 기인했다면, 청년층의 방화는 생활고에서 비롯된 사건이 많다. 지난 1월 18일 서울시 종로구의 한 모텔에서 불이나 투숙 중인 손님들이 대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후 21일까지 나흘간 용산구, 인천 부평구에서도 유사한 방법으로 불을 지른 범인은 22살 청년으로, 경찰 조사에서 제대 후 취업난에 창업에 도전했다 실패하며 진 카드빚 때문에 불을 질렀다고 진술했다. 아울러 죽고 싶었으나 자살도 뜻대로 안 돼 감옥이라도 가야겠단 심정으로 방화를 저질렀다고 덧붙여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지난 1월 15일 청주시 서원구에 있는 카센터에서 화재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수상한 기운을 감지했고, 조사 끝에 경영난을 겪던 사장이 지인인 20대 남성을 사주해 불울 지르게 한 사실을 밝혀냈다. 결국 불을 지른 청년은 현주건물방화 혐의로, 카센터 사장은 현주건조물방화 교사 혐의로 구속됐다.그런가 하면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편의점에 불을 지른 사건도 있었다. 지난 1월 14일 경남 양산시 삼호로 인근 편의점을 운영하던 30대 남성은 자신이 입주한 건물 화장실에 불을 질러 편의점 내부와 옆 건물 화장실이 불에 타는 등 약 1억 2000만 원 상당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이 남성은 편의점 운영 적자가 계속되자 본사로 입금해야 할 수익금을 수개월째 체납해 재산 압류 등 채무독촉과 민사소송에 시달려온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그는 이 방화를 통해 보험금과 운영 기간 연장계약을 받으려 했다고 털어놨으나 CCTV를 통해 경찰에게 덜미를 잡혀 지난달 23일 붙잡혔다. 최근 경기가 어려워지고, 청년세대의 취업난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벼랑으로 내몰린 20~30대가 생활고를 비관해 저지른 방화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방화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뒤집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상황을 역전시키고자 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 잘 돼서 보험금을 타도 좋고, 안 되면 교도소로 가서 최소한 부모님께 손 벌릴 일 없이 먹고사는 걱정 안 하고 지내면 좋다는 생각이 기저에 자리 잡고 있다. 취업난, 실업문제, 생활고까지. 청년 실신(청년 실업자+신용불량자의 합성어) 상태에서 극대화된 분노는 급기야 터져 ‘될 대로 되라는 식’의 방화로 번진 것이다.

방화는 단순한 범죄가 아닌, 강력범죄이며 사회 구조적 현상이다.

방화원인과 범죄자 특성 주목해야방화는 살인, 성폭력과 같은 강력범죄에 속하지만, 검찰, 경찰에서 방화사건을 다루는 태도는 비교적 유연했던 것이 사실이다. 살인과 성폭력은 면대면 범죄이기 때문에 그 피해자 수가 한정된 것에 반해 방화는 단시간 내 불특정 다수의 인명피해와 막대한 재산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범죄자의 의도보다 훨씬 큰 피해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화 범죄자의 범행동기와 이들 개개인이 가진 특성에 관한 연구나 접근은 미미했다. 방화에 깃든 범죄자의 심리를 보다 면밀히 분석하고, 방화문제가 하나의 사회 구조적 문제임을 인식해 제2, 제3의 숭례문 화재와 같은 대형화재를 예방해야 하지 않을까. 방화를 방관하고 있는 사이, 오늘도 현장에서 소방관들은 목숨을 걸고 떨어진 장갑을 낀 채 화마에 맞서고 있다.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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