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기자
한화큐셀 말레이시아공장에서 한 직원이 모니터를 보며 생산공정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한화큐셀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1 "일희일비(一喜一悲)말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11년 10월 그룹 창립 59주년 기념사에서 태양광같은 미래 신성장사업을 장기적 안목에서 보라고 주문했다. 당시 세계 경기 침체와 지속적인 유가 하락으로 태양광 사업 전망은 불투명했다. 야심차게 태양광 사업에 진출했던 국내 기업들도 속속 출구전략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태양광을 차세대 먹거리로 내세운 한화를 바라보는 눈길에도 근심이 섞였다. 그러나 김 회장은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도 다보스포럼 등 세계적인 컨퍼런스를 돌며 "태양광 발전 기술의 진화에 따른 발전 원가 하락으로 시장은 역동적으로 성장해 나갈 것"을 역설했다.한화그룹은 창립 60주년 이듬해인 2012년 독일의 큐셀을 인수, 한화큐셀로 출범시키고 독일, 중국, 한국, 말레이시아에 이르는 연구개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한화솔라원과 한화큐셀이 합병을 결의하고 2015년 2월 한화큐셀로 출범하며 태양광 사업 진출 5년 만에 세계 1위의 생산 규모를 가진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다. 이어 2015년 2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하고 3분기에는 사상 최대규모 흑자를 달성했다. #2 "미래는 지금이다" 한국타이어가 2013년부터 선보이고 있는 '더 넥스트 드라이빙 랩(The Next Driving Lab; TNDL)' 캠페인은 한국타이어가 그간에 쌓아온 혁신역량의 결집체다. '누가 드라이빙을 창조하는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TNDL은 말 그대로 다음 세대의 드라이빙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다. 서승화 한국타이어 부회장은 "드라이빙을 리드하는 주체로서의 타이어를 재조명하고, 미래 드라이빙 리더십을 향한 한국타이어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운전사의 생각만으로 타이어를 움직이는 '마인드 리딩 타이어', 외바퀴 차량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볼 핀 타이어'는 한국타이어의 혁신과 도전정신을 담아내며 고객의 호응을 얻었다. 이탈리아 비브람의 산악 하이킹용 신발 아웃솔(밑창)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오프로드 콘셉트 타이어, 공기없이 달리는 미래형 타이어어 등은 모두 이같은 혁신의 산물이었다.한국타이어의 볼핀 타이어
◆불황기, R&D로 성장하는 기업= 불황기에는 각 기업의 대응전략에 따라 도태되는 기업이 있는 반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성장하는 기업이 동시에 상존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불황기에도 R&D 부문을 강화하고 신제품을 출시하는 등 공세적으로 투자를 확대해 경쟁업체를 제치거나 시장을 재편하고 위기를 극복하며 성장하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나 시장 변화에 따라 R&D의 패러다임도 바뀐다. R&D의 양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예측한 투자의 목표와 방향성, 효율성 같은 질적 성장도 중요해졌다. 만년 '사양산업'이라는 섬유를 모태로 한 효성의 변신은 불황기 과감한 R&D 투자의 대표적 성공사례다. 1990년대 들어 신(新) 화학섬유가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효성은 고부가가치의 스판덱스의 독자개발을 결정했다. 온갖 시행착오 끝에 1997년 1월 자력으로 스판덱스의 공업화에 성공하면서 세계 4번째 독자 기술 보유국의 위상을 확보했다. 이후 2013년 탄소섬유 생산공장을 전북 전주에 완공했으며 2020년에는 연간 생산 규모가 1만4000t으로 늘어나 탄소섬유의 100% 자급화에 성공하게 된다. 효성은 또한 10여년간 500억원의 R&D 비용을 투자해 세계 최초로 독자기술을 바탕으로 대기오염의 주범인 일산화탄소와 올레핀(에틸렌ㆍ프로필렌)으로 만드는 첨단 고성능 신소재인 폴리케톤의 개발에 성공했다. 효성은 이어 2012년 3월 울산에 연간 1000t 생산이 가능한 규모의 폴리케톤 중합 생산설비를 구축하고 2020년까지 총 1조5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다.이를 통해 효성의 연간 영업익은 2013년 4859억원, 2014년 6003억원, 2015년 9502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달성했다. 스판덱스는 2011년 세계 시장점유율 11.0%로 세계 1위를 탈환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31%로 후발주자와 격차를 크게 벌렸다. 화학소재 부문에서도 세계 1위의 폴리프로필렌수지(PPR) 생산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PPR 원료인 프로판탈수소공정(DH)과 PP, 반도체용 가스의 R&D와 증산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효성의 탄소섬유 '탄섬'이 적용된 현대자동차의 콘셉트카 인트라도 프레임
◆잘못된 R&D는 저주로= 반면에 해양플랜트 산업의 경우 개발한 기술을 실제 제품생산으로 연결하는 데 한계에 부딪히면서 대규모 부실의 단초가 됐다. 2010년 기준 조선분야 국제표준 237종 가운데 한국의 기술을 표준화한 것은 1건에 그쳤다. 조선해양산업 전체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큰 엔지니어링 역량도 갖추지 못했다. 우수한 건조능력을 바탕으로 부유식 원유생산ㆍ저장ㆍ하역설비(FPSO) 등 해양플랜트 발주물량을 대부분 수주하고 있다. 그러나 상부구조물(topside) 엔지니어링 능력 부족 등으로 해양플랜트 수주금액의 약 40%를 해외 업체에 지불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기자재 국산화율도 낮아 충분한 부가가치 창출을 어렵게 하고 있다. 국내 조선기자재 업체들의 해양플랜트 진출 시도가 늘고 있지만 FPSO의 경우 기자재 국산화율은 36.9%, 국산 조달률은 35.8%에 불과하다. 핵심부품은 20% 수준이다.◆R&D 양적 성장에도 中 따라가려면 멀어= 삼성과 현대차, SK하이닉스, LG전자와 같은 간판 기업들이 R&D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의 R&D는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보다 양적, 질적으로 우위에 서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R&D 투자 규모는 1980년대만 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1%에 못 미쳤지만 1990년대부터 공공과 민간부문에서 투자에 박차를 가한 결과 2014년에는 GDP 대비 4.29%로 늘어났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그러나 질적 성과는 미흡하다. R&D의 대표적 결과물인 한국의 과학기술논문(SCI) 수는 2001년 1만6104건에서 2013년 5만1051건으로 급증했지만 논문 1편당 피인용 횟수는 4.55차례로 세계 평균 5.32차례에 못 미쳤다. R&D에 따른 국내 특허 등록 건수도 2010년 17만101건에서 2014년 21만292건으로 늘었지만 A등급 특허 비중은 2010년 23.0%에서 2014년 18.6%로 떨어졌다. 특히 정부 R&D 특허건수 중 A등급 특허 비중은 17.1%에서 11.9%로 낮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