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필 감독 신작 '도리화가', 판소리의 가사와 감정 극중 인물에게 입히려 노력
부족한 판소리와 연기에 진채선 조명은 단순해져
영화 '도리화가' 스틸 컷
※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판소리 연구자들의 사설집 '신재효의 세계 인식과 욕망(2012)'은 신재효를 '19세기를 살다간 특별한 개인'이라고 정의한다. 유교의 가치관이 지배하던 조선에서 문화예술을 후원하며 진보적 교육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그의 세계관은 판소리가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시대에 금기를 넘어선 여류소리꾼 진채선과 닮은 구석이 많다. 영화 '도리화가'는 이 두 개인과 금기를 깨면 목숨이 위태로웠던 조선 말기의 충돌을 드라마틱하게 그린다.서술은 지극히 대중적이다. 두 개인에 대한 심도 깊은 관찰이나 한국적 느낌을 살릴 기회가 곳곳에 있지만 영화는 상업적인 코드를 벗어나지 않는다. 판소리를 활용하는 방식도 다르지 않다. '춘향가', '심청가' 등의 감정과 가사를 어떻게 전달할 지보다 그 정서를 진채선과 신재효에게 입히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진채선은 이몽룡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춘향이로 보이다가 어느 순간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로 몸을 던지는 심청으로 변한다.이종필(35) 감독은 이 교집합의 요소들을 너름새를 강조하며 친절하게 설명한다. 학계에서 정의하는 너름새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풍물을 손에 들고 추는 춤사위와 캐릭터와 하나가 되는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의 메소드 연기다. 이 감독은 시종일관 후자를 밀어붙인다. 영화에서 진채선을 두 차례 물에 빠뜨리고, 마지막에는 흥선 대원군의 첩이 되게 한다. 신재효가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는 주요인도 실감나는 연기에 대한 갈증으로 설정한다. 영화에서 그는 "저 아이에겐 특별한 게 있네. 저 아이는 진짜 심청이도 되고, 춘향이도 되는 것일세"라고 한다.
영화 '도리화가' 스틸 컷
판소리의 내용을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한 영화는 적지 않다. 그러나 실존인물에 그 정서를 녹여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점에서 '도리화가'는 세련돼 보인다. 이런 느낌은 시사 뒤 갑론을박으로 이어졌던 신재효와 진채선의 불분명한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영화에는 멜로로 보일만한 요소들이 여럿 배치됐다. 신재효가 득음을 위해 애쓰다 쓰러진 진채선을 들쳐 업고 동굴로 향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감독은 이 관계를 때로는 선생님과 제자, 때로는 아버지와 딸로 그려 깊은 여운을 남긴다. 피천득이 수필 '인연'으로 담담하게 회고하는 아사코처럼.이런 정서를 전달하는 데는 '서편제(1993)'의 오마주(존경적 모방)도 적잖은 역할을 한다. '도리화가'는 진채선이 어머니와 함께 걸어가는 신으로 출발한다. 이는 '서편제'에서 눈 먼 송화(오정혜)와 이름 모를 소녀가 함께 걷는 마지막 신의 연장선상 같은 느낌을 준다. 영화는 '서편제'에서 고달픈 서민의 삶을 노래로 승화시키는 진도아리랑 신도 차용한다. 진채선을 한양에 두고 돌아가는 신재효와 그의 제자들의 감정을 역설적으로 풀어내면서 판소리가 가진 한과 흥을 극대화한다. 우회적으로 캐릭터의 감성을 짚는 손길은 판소리가 없는 신에서도 돋보인다. 이 감독은 진채선이 판소리에 입문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지 않는다. 아궁이 앞에서 남성으로 상징되는 불을 때며 흥얼거리는 장면을 여러 차례 삽입하며 판소리를 향한 열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영화 '도리화가' 스틸 컷
그런데 갈등이 심화되거나 인물에게 큰 변화가 생기는 등 큰 맥락이 바뀔 때는 현악 클래식을 사용한다. 판소리를 다룬 영화라고 판소리만 사용해야 한다는 규칙 따위는 없다. 그러나 영화가 한국적 정서와 깊은 여운을 추구하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남는다. '서편제'도 김수철의 궁중악대금곡 '천년학', 소금곡 '소리길' 등 연주곡에 대해 비슷한 지적을 들었다. 하지만 소금, 대금 등 국악기로 연주돼 관객이 느끼는 괴리감은 크지 않았다. 이 감독은 "관객이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고 했다. 현악 선율은 진채선이 판소리를 부르는 여섯 신에 모두 등장한다. 배수지(21)의 판소리 실력만으로 영화를 끌고 가기가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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