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응기자
1971년 서울 논현동에 지어진 공무원아파트 모습(출처:서울시)
1972~1973년에는 압구정동, 논현동, 학동, 청담동 등에 단독주택 단지를 조성했는데 이 곳의 입주자들이 현재 강남 신화의 첫 발을 디딘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시는 시내버스 노선을 강제 배정했으며 강남의 땅이나 건물을 사면 세금 감면 혜택을 줬다. 건물 부지 최소 면적은 89㎡에서 165㎡로 늘렸다. 1970년대 서울의 최대 과제는 강북 인구 집중 억제였다. 1972년 당시 양택식 시장은 “사치와 낭비 풍조를 막고 도심 인구 과밀을 억제하기 위해 종로구, 중구, 서대문구 등에 바, 캬바레, 나이트클럽, 술집, 다방, 호텔, 여관, 터키탕 등 각종 유흥시설의 신규 허가는 물론 이전도 불허한다.”고 발표했다. 그 뿐 아니라 종로구와 중구 전역, 용산과 마포구 내 시가지, 성북구와 성동구 일부 지역을 아예 특정시설제한구역으로 묶어 백화점, 도매시장, 공장 등의 허가를 내주지 않고 핵심 지역에는 건물의 신축이나 증축도 불허했다. 한 쪽을 죄면 다른 쪽이 부풀게 마련이다. 기업과 상업시설들이 강남으로 옮겨가고 신사동, 압구정동, 논현동 일대가 유흥가로 변해갔던 것이다. 1973년 말 5만여명이던 영동지구 인구가 5년 후인 1978년에는 21만여명으로 네배나 늘어났다. 현재 강남 부동산을 떠받치는 핵심 기반인 학군 역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강북의 경기고와 서울고, 숙명여고, 경기여고 등 유서 깊은 명문학교들을 강남으로 옮겨가도록 했으며 이를 중심으로 학원가가 형성되면서 교육의 메카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강남은 자생적으로 성장했다기보다는 철저한 계획에 따라 육성된 것이다.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겨가 지어진 경기고(출처: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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