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죽는 남자, '더미'의 고백

자동차 보험료 산정평가로 바빠져...차 충돌 실험용 몸값 15억원짜리도

정면더미

[아시아경제 김대섭 기자] 나는 '더미(dummy)'입니다. 인간의 신체를 그대로 흉내낸 인체모형이지요. 사람을 대신해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 매일 죽었다가 새로 태어나는 숙명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몸 값은 최대 15억원. 요즘에는 자동차 보험료 산정 때문에 눈코뜰새 없이 바쁩니다. 내가 어떻게 인간들의 안전을 돕고 있는지 소개할게요.더미는 1949년 미국 시에라 엔지니어링사와 알더슨 리서치 연구소에서 '시에라 샘'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처음에는 미군 공군이 항공기와 우주선의 비상탈출 낙하산 시스템을 개발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자동차 충돌 실험에 본격적으로 투입된 것은 1950년대 후반. 미 교통안전국과 자동차 회사들이 자동차사고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더미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초기에는 시신을 기증받아 머리나 목, 가슴 등 주요 부위를 중심으로 실제 충돌시험을 거쳐 확보한 결과를 토대로 제작했다. 이런 테스트를 통해 머리뼈와 갈비뼈에 골절이 생기는 한계 수치나 타박상이 생기는 정도를 수치화하고 인체상해의 기준을 만들었다. 지금의 더미는 베이지색 고무로 이뤄졌다. 갈비뼈는 금속으로 만들고 머리는 두개골처럼 단단한 알루미늄으로 구성한다. 머리, 몸통, 팔, 다리, 골반 등의 무게 중심에는 부위별 충격량을 계산하는 가속도 센서를 장착한다. 목, 어깨, 무릎, 발목 등의 관절부위에는 하중과 비틀림을 측정하는 로드셀(힘 센서)을 붙인다. 부위에 따라 관절의 밀림을 계측하는 변위계, 회전력을 측정하는 각속도계 등도 부착해 시험하곤 한다.초기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여러 더미 제작사들이 경쟁했지만 지금은 미국 휴머네틱스사로 합병돼 사실상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센서 없이 기본 골격과 스킨으로 구성된 더미는 가격이 6000만~8000만원. 센서를 포함하면 1억5000만원 정도. 최근에는 센서와 계측기를 더미 내부로 삽입하고 인체와의 유사성을 높이면서 10억~15억원으로 가격이 뛰었다.

유아용 더미

형태별로는 남성용, 여성용, 임산부용, 성인용, 유아용 더미가 있다. 용도별로는 정면충돌시험용 더미, 후면추돌시험용 더미, 측면시험용 더미로 구분한다. 제작 기간은 6개월~8개월이 걸린다. 소모품처럼 1회 사용이 아닌 교정과 수리과정을 거쳐 반영구적으로 사용한다.국내에서도 더미의 쓰임새가 부쩍 늘었다. 보험개발원은 올해 처음 수입차 출시 전 보험료 등급 평가를 실시했다. 등급 평가는 차량 별 손상정도, 수리용이성, 손해율에 따라 보험료 등급을 산정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더미가 각종 평가에 동원됐다. 보험료 재산정도 진행 중이어서 더미는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심상우 보험개발원 시험연구팀장은 "국산ㆍ수입차 보험료 차등화를 위한 충돌시험과 안전성 연구를 위한 시험 확대 등으로 더미 테스트의 연간 횟수가 종전 25회 안팎에서 이제는 100회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더미는 재사용이 가능해 추가 구매가 늘어나지는 않겠지만 시험 횟수가 많아지면서 역할이 더욱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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