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이준석 살인죄' 인정, 사고원인 등 의문 여전…'대형 참사' 현장책임자 살인죄 인정 최초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div class="break_mod"> ‘법조 X파일’은 흥미로운 내용의 법원 판결이나 검찰 수사결과를 둘러싼 뒷얘기 등을 해설기사나 취재후기 형식으로 전하는 코너입니다.
“마음이 아프다. 살아있었다면 오늘 수능에 응시했을 것이다. 1년 7개월이 지났는데 어느 것 하나 진실이 밝혀진 게 없다.”12일 오후 2시30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정문 앞. 세월호 참사로 자녀를 잃은 단원고 학부모들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나, 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날은 특별한 날이다. 단원고에 입학하며 대학진학의 꿈을 위해 달려왔던 그 아이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는 날이다. 각자의 꿈을 이루고자 열심히 공부했다. 좋은 대학에 가서 엄마, 아빠를 즐겁게 해주고 싶었던 그 아이들은 이날 시험을 보지 못했다. 지난해 4월16일 세월호 참사로 희생됐기 때문이다. 304명의 희생자 중 250명에 이르는 단원고 2학년생, 친구들은 3학년이 돼서 이날 수능을 봤지만, 검은 바닷물 속에 가라앉았던 그 아이들은 시험장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이날은 또 다른 의미에서 특별한 날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세월호 사건은 단순한 해상 사고였다고 주장한다. 세월호 사건이 이슈로 번지면 불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세월호라는 얘기만 나와도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 이들도 있다. 세월호 아이들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사고의 희생자들일까. 12일 대법원은 의미심장한 판결을 내놓았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의 ‘살인죄’를 유죄로 판단해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이준석 선장의 행태는 승객 등을 적극적으로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행위와 다름없다”고 판시했다. 세월호에 있던 아이들은 검은 바다 그 속에서 꽃다운 생을 마감할 이유가 없었다. 세월호에 뭔가 문제가 생겨 침몰의 위기에 놓였지만, ‘퇴선명령’을 통해 탈출했다면 상당수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는 대법원의 판단이다. 이준석 선장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한 근본 이유는 살릴 수 있었던 승객들을 사실상 고의로 익사시켰다는 판단이 담겨 있다. 이준석 선장은 도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4월16일 그날의 급박했던 아니 이해할 수 없는 시간들을 담아냈다. 이준석 선장이 세월호 침몰 위기를 느끼고 상황 파악에 나선 것은 오전 8시52분이다. 1등 항해사 강모씨는 오전 8시55분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본선 아 위험합니다. 지금 배 넘어가 있습니다”라며 구조요청을 했다.
세월호 사고 당시 사진
선원들은 세월호가 침몰할 수 있음을 직감했다. 이준석 선장은 오전 8시58분 ‘승객들로 하여금 구명조끼를 입고 그 자리에 대기하라’는 방송을 지시했다. 오전 9시13분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 인근에 있던 '둘라에이스호'가 진도 VTS 구조요청을 받고 세월호로 다가오면서 “탈출을 하면 저희들이 구조를 하겠습니다”라고 전했다. 이준석 선장의 ‘퇴선 명령’ 지시와 신속한 이후 대처가 이뤄졌다면 상당수는 목숨을 건질 수 있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이준석 선장은 무대응이었다. 이준석 선장은 오전 9시24분 둘라에이스호 선장으로부터 “탈출시키십시오. 빨리”라는 교신을 들었지만, 여전히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진도 VTS는 오전 9시25분 “세월호 선장님께서 최종적으로 판단을 하셔 갖고 지금 승객 탈출을 시킬지 최대한 지금 빨리 결정을 해주십시오”라고 교신했다. 이준석 선장은 구조에 나섰던 둘라에이스호 선장, 해상교통관제선터(VTS) 등으로부터 수차례 ‘승객 탈출’ 권유를 받았다. 이준석 선장은 그것을 듣고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오전 9시39분 일부 승무원이 퇴선하는 것을 본 이준석 선장은 오전 9시46분 세월호에서 퇴선했다. 해경123호 경비정에 탑승했지만, 자신이 선장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다. 퇴선 이후에도 해경에게 승객 등이 선내 대기 중인 사실을 알려주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세월호 이준석 선장
이준석 선장이 의문 가득한 행동을 보이며 세월호를 떠난 직후인 오전 9시47분 세월호 3층 난간이 침수됐고, 9시50분 4층 난간이 완전히 침수돼 출구가 차례로 폐쇄됐다. 그렇게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세월호 희생자들은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세월호 사건을 둘러싼 법적 판단의 분수령이 될 ‘이준석 선장 상고심’은 이제 끝이 났다. 대법원은 처음으로 구조의무 위반 여부가 쟁점인 사안에서 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인정했다. 대형 재난사고에서 책임자가 구조의무를 소홀히 할 경우 ‘살인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대형참사가 벌어질 때면 현장 책임자만을 처벌하는 소위 꼬리 자르기가 반복됐고, 그 처벌수위조차 대체로 업무상 과실치사에 그쳤다”면서 “대법원 판결로 이제는 (현장 책임자가) 제 생명만 챙기지는 못할 것이다. 부족하나마 보다 안전한 사회로 한 발짝 다가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은 비록 젊은 나이에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지만, 한국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의 씨앗을 뿌린 셈이다. 이준석 선장 상고심 선고로 세월호 사건이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핵심적인 의문은 풀리지 않고 있다. 그중 하나는 이준석 선장의 행동이다. 그는 왜 승객 상당수를 살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물에 빠져 숨지도록 방치했을까. 이준석 선장의 단독 판단인지 다른 누군가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세월호 침몰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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