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나온 아베 쏴버리고 싶었다'

-'실제 안윤옥'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 인생스토리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인터뷰 중인 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원다라 기자)

[아시아경제 원다라 기자] "우리집 2층에는 독립군 청년들이 살았고, 독립군 자금을 대기 위해서 중국 극단에서 무용,연극도 했어요. 그때 당시 독립군 편지 전달을 맡았는데, 실패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죠"영화 '암살'의 여성 독립운동가 안옥윤(전지현 분)의 이야기가 아니다. 89세 여성 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의 이야기다. 생존한 단 네 명의 여성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인 그는 12일 오후 3시 15분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에서 '그 날'을 바로 어제처럼 생생히 기억해냈다. 열네살 오희옥. 그가 살던 집 2층에는 늘 독립군 청년들이 가득했다. 김구 선생은 어린 그에게 "글씨를 쓸 때는 팔꿈치를 붙이지 말고 떼고 써야 한다"고 서예를 가르쳤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나라가 살아야(독립해야) 우리도 산다"며 독립군을 위해 12가마씩 밥을 지었다. 아버지(만주 독립투사 오광선)도 역시 김구 선생과 독립운동을 함께했다. 일본군에 쫓기다 총을 맞고 옥살이를 했다. 초주검이 돼 들판에 버려졌다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떠올릴 때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 그러다보니 누군가 왜 '독립운동가가 되었는지'를 물어보면 대단한 이유가 없다. 그저 그는 "어른들이 하는대로 따라 했을 뿐 아무것도 모르고 (독립운동을) 시작했다"고 말할 뿐이다. 어린 독립운동가 시절을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힘들고 순간보다는 그때 함께 떠들고 웃었던 언니, 오빠들이 떠오른다. 독립군 자금 마련을 위해 중국 극단과 무용이며, 공연을 함께 했을 때는 간간히 근심없이 웃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뒤이어 떠오르는 기억은 일본군 총에 맞아 눈앞에서 쓰러진 학도병의 얼굴이다. 어린 학도병들을 독립군이 있는 후방으로 후퇴라는 임무를 받고 손을 입에 대고 목청껏 소리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하지만 바로 앞까지 당도해 끝내 총에 맞아 쓰러진 어린 학도병의 모습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쉬 사라지지 않는다. 그 후로는 독립군 사이에 오가던 편지를 제 때 전달하지 못했을 때, 나 때문에 또 누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광복의 순간은 별안간 찾아왔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기쁨보다는 의아함에 가까웠다. 미국 OSS에 가서 훈련을 받은 독립군이 도착하기 며칠 전이었다. 독립군의 손으로 나라를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끈질겼던 일본은 너무 쉽게 항복을 선언했다. 시간은 흘려 열네살 어린 광복군은 여든아홉살 '독립운동지사'가 됐다. 함께했던 정정화 지사는 흑백사진으로 남은 지 오래고, '국가보훈처가 인정한 여성독립유공자 248명' 중 남은 것은 네명 뿐이다. 하지만 TV를 볼때면 통일 이전의 고통을 상기시키는 얼굴이 있다. 농담조로 "TV에 나온 아베를 총으로 쏴버리고 싶다. 하지만 뭐 TV만 망가지지"라고 말하지만, 직접 일제강점기를 겪은 그로서는 언제 또 다른나라의 침략을 받을 지. 후손들이 또 다시 그 고초를 겪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진다. 평화 통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도 그래서다. * 1926년 만주에서 태어난 오 지사는 1939년 4월 14세의 나이로 중국 유주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해 1941년 1월 1일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될 때까지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일본군의 정보수집, 일본군 내 한국인사병 탈출, 방송, 서한 전달 등 을 맡았다.이후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애국훈장을 수여받았다. 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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