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훈 주필
요정 에코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수다쟁이 에코는 제우스의 아내 헤라의 저주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잃고 오직 상대방의 마지막 말만을 따라 할 수 있게 된다. 비극의 2막은 에코가 미남 사냥꾼 나르시스를 짝사랑하면서 시작된다. 자신만을 사랑한 나르시스는 에코의 손을 뿌리친 채 죽어 수선화로 피어난다. 비탄에 빠진 에코는 결국 목소리만 남아 메아리가 되었다. 시대를 넘어 비극의 주인공 에코가 한국 땅에서 부활했다. 그것도 무리지어 등장했다. 요정 에코와 한국판 에코는 닮은 점이 많다. 꿈 많은 청춘이다. 가슴은 뜨겁고 소망은 간절하다. 하지만 손을 뻗어도 잡아주는 사람이 없다. 목소리를 높여 보지만 메아리로 되돌아 올 뿐, 이제 모든 것을 포기했다. 언제부턴가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의 자녀를 에코 세대(1979~1992년생)라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는 700만명, 그들의 2세인 에코 세대는 1000만명에 육박한다. 두 세대를 합치면 우리나라 총 인구의 35%에 이른다. 20~30대에 넓게 포진해 있는 에코 세대는 앞으로 20년, 30년 한국을 이끌어 갈 미래의 주역이다. 그들이 흔들리면 나라가 흔들리고, 그들이 방황하면 나라가 방황할 것이다. 그들이 지금 천 길 낭떠러지 위에 서 있다. 고용절벽에 절망해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했다. 정부는 지난주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을 내놨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책을 발표하면서 에코 세대의 고용 현실을 3가지 악재로 축약했다. '첫째 베이비부머 세대의 자녀인 에코 세대가 한꺼번에 취업시장에 나왔다. 이전에 비해 10만명 이상 공급이 늘었다. 둘째 에코 세대의 대학진학률도 사상 최대였다. 셋째 내년부터 정년이 60세로 연장되면 청년 취업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사면초가(四面楚歌),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작심하고 내놓았다는 정부 대책에 비판이 쏟아졌다. 예컨대 20만개의 청년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으나 그중 11만여개는 인턴, 직업훈련과 같은 고용 '기회'의 창출이었기 때문이다. 정부 대책을 놓고 맹탕이니, 재탕이니, 신기루니 말이 많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조차 뾰쪽한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 백약이 무효인 현실에 청년실업의 심각성이 있다. 최 부총리의 3악재보다 더 본질적인 재앙은 활력 잃은 경제다. 한국 경제는 5분기 연속 0%대 성장률 행진을 했다. 제조업은 고용 없는 성장에 들어선 지 오래다. 일자리 창출의 원천이 꽉 막혔다. 6차례나 쏟아 낸 정부 청년고용 대책의 한계는 여기서 출발한다. 고용절벽은 정부 힘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깊고 아득하다. 기업과 학교, 가계가 손잡고 나서도 넘을까 말까한 상황이 됐다. '3포 세대'로 불리는 에코 세대의 대칭점에 베이비부머가 있다. 에코들은 취업 전선에 들어서고, 베이비부머들은 직장을 떠나는 나이가 됐다. 청년들이 고용절벽에 섰다면 베이비부머들은 은퇴절벽에서 떨고 있다. 준비 없는 노후를 걱정하면서 그들 또한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부모 자식이 함께 구직시장을 떠도는 우울한 풍경이 오늘의 현실이다. 청년고용과 한 묶음으로 벌어지는 임금피크제 논란이 세대 간 일자리 다툼으로 비치는 배경이다. 부모 세대가 나르시스가 돼 귀를 닫고, 자녀 세대가 요정 에코처럼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는 불통의 상황이 된다면, 세대 간 갈등의 골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날선 외눈으로 바라보면 은퇴 세대가 일자리를 다시 찾거나 정년을 연장하는 것은 젊은이의 밥그릇을 빼앗는 행태에 다름 아니다. 정말 그런가. 오히려 그 반대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는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다. 베이비부머가 아무런 소득 없이 긴 노년을 보내야 한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에코 세대의 몫으로 돌아온다. 백수 자식을 둔 부모는 가슴 한편에 아들 딸의 실업 고통을 나눠 담는다. 일자리에서도 소통과 배려, 양보는 빛나는 미덕이다. 특히 절박한 청년실업 문제는 정부와 기업, 기업과 학교, 노와 사, 부모와 자식이 힘과 지혜를 모으고 격려하면서 풀어 가야 할 시대적 과제다. 박명훈 주필 pmho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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