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과 86세대의 덫에서 벗어나라
'타타타'는 대중가요 제목으로 잘 알려졌지만 산스크리트어로 '그래 그거야'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다방면의 이슈를 날선 시각으로 해부한 온라인칼럼 '타타타'를 선보입니다.새정치민주연합이 처한 위기는 과거의 영광이 현재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그래서 아무 것도 털지 못하고 계륵처럼 안고 가는 ‘고인물’ 현상에서 비롯된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누구도 ‘고인물’을 퍼내려는 시도를 하지 못하고 주저할 뿐이다.‘호남’이라는 지지기반과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486과 586세대를 아우르는 신조어)’로 대변되는 정치적 연대 세력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 때는 야당의 강력한 성장 엔진 역할을 발휘했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야당을 지리멸렬하게 만드는 기득권 세력을 대표하는 신세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안타깝게도 80년대의 전자오락 ‘갤로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가 지금의 새정연이다. ‘갤로그’의 추억에만 머무는 시각으로 실시간 온라인 게임과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바일 게임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독설2 = 정치적 금치산자가 되기 싫은가? 그러면 호남을 벗어던져라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진실은 새정연이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세력이라는 점이다. 호남을 거점 삼아 충청권의 자유민주연합과 연정을 이뤄내 김대중 정권이 탄생했다. 정책 연정이 아닌 지역 연정이었다. 그래도 진정한 의미의 정권 교체가 처음 이뤄진 것이니 의미가 컸다. 딱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지역을 기반으로 한 합종연횡은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충청권의 맹주(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다른 지역의 맹주는 사실상 없는 탓이다.호남의 정치적 의의는 단순한 지역 기반이 아니다. 호남에서 시작된 열린 ‘정치의식’을 뜻한다. 2002년 당시 여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비주류 ‘노무현’의 불씨를 점화시킨 곳이 바로 광주였다. 지역 기반 논리였다면 당시 대세였던 이인제 후보로 표가 몰려야 했다. 그러나 광주의 선택은 새로운 정치, 새로운 인물이었다. 지역의 ‘한(恨)’은 DJ의 집권으로 어느 정도 희석된 상황이었다.세월이 흘렀지만 호남의 ‘한’을 앞세운 지역 정서를 여전히 만지작거리는 작태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새정연은 분당을 하나의 ‘상수’로 취급하고 있다. 거품을 물고 막아내려는 처절함도 없고 분당을 통해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할 것이라는 기대도 없다.
천정배 의원
분당을 도모하는 주체들이 모두 호남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천정배 전 장관은 지난 4월 재보선에서 새정연을 탈당해 광주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신당 창당의 구심적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천정배 의원의 출마의 변은 ‘호남 정치의 복원’이었다. 공천이 여의치 않자 탈당하고 출마했다는 ‘팩트’에 대해서는 애써 의미를 지운 채 말이다.물론 문재인 대표나 새정연이 호남에서 신뢰를 잃고 외면당하는 현실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천 의원이 호남의 ‘정치의식’을 대변해 당선됐다고 믿을만한 단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호남이 새정연을 외면하는 흐름을 타고 무소속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이 성공의 요인이 아닐까 싶다.새정연의 혁신 이벤트로 셀프 디스 시리즈가 시작됐다. 문 대표와 함께 박지원 의원이 첫 테이프를 끊었다. 박 의원은 “호남, 호남해서 죄송합니다”라고 셀프 디스의 말문을 열었다. 그가 털어놓은 자기반성의 변이다. “서러웠습니다. 호남이라 눈치보고, 호남이라 소외당했습니다.”“드디어 정치에 입문했고 전 호남, 호남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지금껏 차별 받고 소외 받은 호남을 저라도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호남에 대한 본인의 소회로서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국민’을 외치겠다는 취지로 말을 맺었다. 그러나 박 의원이 착각하는 부분이 이 대목이다. 호남의 성숙한 정치의식을 연상하면서 댓글을 달아보겠다.“소외당하고 서러운 호남은 그저 가슴에 담아두세요. 새로운 정치, 새로운 인물에 목말라하는, 그래서 대한민국의 낡은 정치 지형을 바꾸고 싶은 호남인들을 위해 더욱 더 호남을 외쳐주세요. 지역 정서에만 기대려는 호남은 제발 벗어 던져 주시길 바랍니다.”당직 개편을 통해 박지원 계파 인물들이 대거 등용됐다고 해서 야당이 통합되는 것일까? 이런저런 이유로 문 대표가 마뜩찮은 호남 민심이 박 의원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을까? 박 의원의 속내대로 문 대표가 퇴진한다면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이 열릴 수 있을까?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
호남에 기반을 둔 박주선 의원 역시 문 대표의 퇴진과 친노 계파의 완전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탈당이 불가피하다고 계속 불을 지피고 있다. 새정연이 호남으로부터 민심을 잃은 것이 어찌 문 대표와 친노만의 문제일까? 호남지역 야당 의원들의 책임은 정말 없을까?지난 재보선은 호남의 민심을 여실히 증명한 선거였다. 친박을 대표하는 이정현 후보가 순천에서 새누리당 간판으로 당선된 것이다.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콧노래를 불러왔던 야당 정치 세력에 대한 심판론이었다. 여당 후보 ‘이정연’이 예뻐서가 아니라 걸핏하면 호남을 호가호위 삼아 금배지 놀이에 여념이 없는 ‘그들’이 더 미운 탓이다.#독설3 = 정치권의 86세대는 86세대를 대변하지 못한다지난 15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이 야권을 들썩이게 하면서 새삼 화제가 됐다. 새정연의 이동학 혁신위원(33)이 그 주인공이다.이동학 혁신위원은 SNS를 통해 ‘86세대’를 대표하는 이인영 의원에게 공개편지를 띄워 야권이 열세인 적지에서의 출마를 권유하고 나섰다. 일명 ‘586 전상서’ 사건이다.이 혁신위원이 86세대에게 날린 돌직구는 ▲ 후배 정치인 양성을 뒷전으로 한 채 기득권 향유 ▲ 계파 싸움에만 몰두하는 구시대적 작태 ▲ 새로운 어젠다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능함 ▲ 당의 혁신과 활로를 뚫기 위한 희생정신으로 약세 지역구 출마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후보.
이인영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 답장을 보냈다. ‘거절’이었다. 이 의원은 “우리 당 혁신이 올바른 가치를 추구할 수 없다면 제가 다른 지역구에 출마한들, 또 거기서 당선된들 아니면 낙선한들 어떤 보람이 있을지,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다”며 거절의 이유를 내세웠다. 그는 또 당 혁신에 대해서도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3권의 위기를 외면하면 우리 당의 혁신은 반쪽”이라고 덧붙였다. 지역구를 바꾸는 것보다는 노동 관련 담론을 파고드는 것이 혁신이라는 말이다.이 논쟁에 대해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86세대 임미애 혁신위원이 가세했다. 같은 86세대지만 임 혁신위원의 86세대에 대한 일침은 무척 날카로웠다. 그는 ‘청년 이동학과 586 이인영의 논쟁을 보며’라는 글을 통해 일갈했다.“우리의 20대는 당당했습니다. 독재에 굴하지 않았던 우리는 결국 민주화를 이루어냈고 그 찬란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386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새로운 활력과 대안을 제시해 줄 것이라 믿었던 86세대는 아직도 87년의 지나간 잔치 상 앞에 서성이고 있는 듯합니다.”DJ의 강력한 추천으로 등장한 야권의 86세대는 현역 의원만 10여 명에 달한다. 현역 의원을 제외한 인물까지 셈하면 만만치 않은 세력이다. 기성 정치 세력의 양보와 지원에 힘입어 국회로 진출한 86세대의 기치는 ‘개혁’이었다. 그러나 어느덧 86세대 정치인들은 ‘혁신의 대상’이었고 ‘사다리 걷어차기’의 주역 신세로 전락해버렸다. 임 혁신위원의 지적은 그래서 더 아플 것이다.“권력이라는 괴물과 싸우다 86세대가 또 다른 권력이 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86세대 국회의원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만들었으며 그래서 사회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 저는 의심스럽습니다.” “혁신위에 참여하면서 지켜 본 새정치연합 의원들의 모습은 자신의 문제에만 관심이 있고 정권교체를 갈망하는 국민의 요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내가 살아야 사는 거다’ 딱 이 정도였습니다.”“심지어 ‘486 숙주정치’라는 말까지 들려옵니다.”“친노 비노가 아닌 동지들의 정체성은 무엇인가요?”같은 86세대가 보는 86세대 정치인들에 대한 감정은 임 혁신위원의 글에 함축적으로 녹아져 있다. 86세대와 궤를 같이 한 일반 86세대들 역시 술자리에서 간혹 안주거리로 삼는 대상이 86세대 정치인들이다. 학생운동 당시 총학생회장 등 감투를 쓴 덕에 국회의원까지 지낸 것은 봐줄만 해도 도대체 정치 개혁과 혁신을 위해 제대로 몸을 던져본 사례가 있느냐며 퉁을 주기 일쑤였다. 80년대의 ‘민주 vs 반민주’ 정치 구도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정치 구도가 이분법적이지도 않고 사회가 그만큼 더 복잡해지고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86세대 정치인들의 화법은 ‘내가 옳고 당신들은 틀리다’라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안마다 나만 옳다는 식이다. ‘민주’와 ‘반민주’ 구도에서는 그 대화법이 먹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지난 80년대의 민주화 투쟁 영웅담은 이제 박물관에 고이 모셔둬야 할 것이다. 반독재 투쟁으로 획득한 훈장은 지금의 86세대 정치인들에게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과거의 훈장이 교훈은 될지언정 미래를 담보하지는 못한다. 그 훈장이 미래의 희망으로까지 발전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자기 혁신과 개혁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계속>정완주 디지털뉴스룸 국차장 wjchung@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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