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댄지거, 北의 보통사람 일상을 담다

닉 댄지거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군복차림에 가짜 칼을 찬 한 무용수가 결연한 표정으로 아리랑축전 연습에 한창이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전 국방위 제1위원장이 그려진 대형 그림 앞에서 열심히 잔디를 심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리원 농가의 농부는 손자, 손녀가 수학 숙제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원산의 해변에선 수영객들이 물놀이를 즐긴다. 평양 지하철에선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 찬 눈빛으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카메라를 바라본다.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 북한 주민의 일상을 담은 사진이다. 지난 21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개막한 '북한프로젝트' 전시에 출품된 영국 사진가 닉 댄지거(57)의 작품이다. 댄지거는 지난 2013년 영국문화원의 후원을 받아 북한에서 3주간 체류하며 평양, 남포, 원산, 사리원을 방문해 주민들의 일상을 찍었다. 댄지거는 청년시절부터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분쟁지역과 중국 등지를 여행하며 사진작품을 남겼고 이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89), 토니 블레어 전 총리(62),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69) 등 세계 정상들의 사진을 찍었다. 22일 만난 댄지거는 "사이프러스와 같은 분쟁 국가 등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사진을 찍기에는 북한이 가장 터프했다(힘들었다)"며 "꼭 내가 외국인이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감시를 받는 분위기였고,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도 제약이 많았다. 그러나 동행한 북한의 수행원들은 내 사진을 보진 않았다"고 했다.

닉 댄지거가 전시와 연계해 강연하면서 보여주고 있는 북한 원산의 한 해수욕장 모습.

그는 "북한 주민들은 가족과 연인을 사랑하는 똑같은 사람들이었다"며 "굉장히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봤다"고 했다. 원산의 해수욕장에선 주로 부유층들로 보이는 이들이 술과 음식을 권했다. 언어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수화(手話)로 시(詩)를 읊는 모습에 감동했다. 시의 내용은 북한 지도자들에 관한 것이었다. 댄지거는 "인간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진에 담고 싶다. 클로즈업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도 가까이 다가갈수록 친밀감을 느끼고 감정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댄지거의 북한 사진전은 런던과 홍콩을 거쳐 서울로 왔다. 그는 "이 사진을 북한에서도 전시할 날이 오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이 사진을 한국에서 전시하고 싶었고 소원을 풀었다. 똑같이 북한에서도 전시할 날이 오길 바란다"며 "개인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이들은 세상의 소금 같은 존재들이자, 실제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이다. 선택권과 자유 없는 이들의 인권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했다.1950년대 마가렛 버크-화이트와 크리스 마커, 1970년대 구보타 히로지 등의 사진들처럼, 외국의 사진가들은 인류애에 대한 사진가 특유의 호기심으로 북한을 기록해왔다. 닉 댄지거의 사진도 그들의 연장선에 있으며 서구 사회에 폐쇄적이고 신비스러운 나라로 알려진 북한 사회의 이면을 개개인의 삶의 풍경들을 통해 들춰내고 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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