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환 KISTEP 정책기획실장
지난 4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지연된 미래(The Future Postponed)'라는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정부의 연구개발(R&D), 특히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 축소가 당장은 경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종국에는 국가 위상 약화, 경제적 기회 상실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를 담고 있다.7, 8월은 예산 시즌이다. 내년 나라살림 규모를 결정하는 시기다. 정부 R&D 예산은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서 주요 R&D 사업의 예산이 정해지면 기획재정부가 전체 규모를 정하게 된다. 들려오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올해(18조9000억원)보다 적거나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미 부처로 통보된 지출한도가 작년보다 줄었기 때문에 전혀 신빙성 없게 들리지 않는다. R&D 예산 증가율이 2009년 11.4%에서 2015년 6.4%로 지속적으로 축소되더니 내년에는 거의 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국가재정의 건전성 회복을 위해서는 긴축재정이 필요하다. 물론 R&D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속도와 폭이 너무 가파르다. 더 이상 나라의 미래를 과학기술계에 맡기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연구현장에 전달될까 두렵다. 그동안 우리는 어려운 경제 여건에도 불구하고 R&D를 통한 기술혁신에 상당한 투자를 해왔다. 그 결과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ㆍ사회적 모습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2014년 우리는 경제 규모에 비해 가장 많은 자원을 R&D에 투자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면 이 정도 투자면 충분한 것인가. 우리 상황을 면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R&D 투자의 누적(2001~2012년) 규모는 세계 6위지만 미국의 9분의 1, 주요 경쟁 상대인 일본과 중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가 R&D에 본격적으로 투자한 것이 불과 30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투자를 한 국가와의 격차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전체 R&D 투자에서 정부 재원은 약 25% 내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32.5%)에 미치지 못한다. 감소의 폭도 크다. 2012년도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은 0.5%포인트 미만 감소했으나 우리는 1.1%포인트 줄었다. 차지하는 비중도 적고 감소 폭도 크다. 기업 R&D 투자에서 상위 10대 기업이 40% 내외를 차지하여 편중 현상이 크고, 그 외 기업은 R&D 투자를 크게 줄이고 있는 상황임을 직시해야 한다.지난 6월 OECD는 'Innovation Strategy 2015' 요약본에는 국내총생산(GDP) 성장에서 총요소생산성(TFP)의 기여가 가장 높은 국가가 한국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1995년부터 2013년까지 GDP가 평균 4.24% 성장했으며 TFP이 2.92%포인트를 기여했다는 것이다. 한국 GDP 성장의 68.9%는 기술혁신활동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TFP 증가에 의한 것이며 이는 독일 63.4%, 핀란드 55.1%, 미국 46.4% 등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 분석은 다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술혁신활동이 위축되면 경제성장을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 어려운 재정 여건 속에서도 R&D에 대한 투자 확대 기조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R&D 투자 축소는 기초ㆍ원천기술에 대한 소홀, 민간의 혁신활동 위축으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경제성장의 둔화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지금은 변화와 혁신, 창조와 융합, 효율과 성과는 연구자에게 맡기고 정부는 우보만리(牛步萬里)의 정신으로 연구자를 신뢰하고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후원자, 혁신의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 혁신을 촉진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은 재정 지원이다. GDP 대비 R&D 투자 세계 1위라는 착시에서 벗어나 승자독식의 기술전쟁에서 생존을 넘어 시장을 선도하고자 한다면 투자의 고삐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미래는 잠시 지연(postponed)될 뿐이지만 우리는 그 이상일 수 있다. 오현환 KISTEP 정책기획실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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