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6일(현지시간) 보스턴에 도착, 미국 국빈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앞으로 7박8일 동안 아베 총리는 미ㆍ일 동맹 강화를 위한 일본의 역할 확대를 강조하면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선 교묘한 물타기로 면죄부받기에 주력할 전망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아베 총리는 이날 보스턴에 있는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자택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 참석, 미국 순방의 첫 일정을 소화했다. 다음 날인 27일엔 미국 최고 명문 하버드대학에서 연설하고 질의 응답도 진행할 예정이다. 아베 총리는 이를 통해 일본이 미국과 함께 국제무대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뉴욕에선 미ㆍ일 양국의 외교ㆍ국방 장관 연석회의가 열린다. 이 회담에선 미ㆍ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안이 발표될 예정이다. 그동안 태평양 전쟁의 전범국이란 원죄로 인해 채워졌던 일본의 군사적 족쇄를 풀어나가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과 자위대 역할 확대를 통해 해외에서 군사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할 전망이다. 이를 통해 아베 총리의 숙원인 '전쟁할 수 있는 정상 국가'에 한발 다가서는 셈이다. 미국은 막대한 국방비 지출 부담도 덜면서 일본을 통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중국 군사력을 제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8일엔 워싱턴 DC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과 국빈 만찬이 열린다. 이날의 화두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을 통해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에 맞서기 위해 조속한 TPP 출범을 서둘러왔다. 정상회담을 통해 협상의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미ㆍ일 양국 간 자동차 및 농산물 관세 문제 해결을 위한 돌파구가 열릴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경제적 부문에서도 중국의 급속한 팽창을 견제하면서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광활한 경제 무대를 개척한다는 미ㆍ일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셈이다. 아베 총리는 군사ㆍ경제적 분야에서 미국의 요구에 인심쓰듯 호응하면서도 일본의 실리는 최대한 확보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한발 더 나아가 아베총리는 미국의 중국 견제에 적극 동참하는 대가로 과거사에 대한 면죄부도 노리고 있다. 이번 방미의 하일라이트는 오는 29일로 예정된 미 의회 상ㆍ하원 합동 연설이 될 전망이다. 전후 일본은 줄곧 미국의 맹방을 자부해왔지만 그동안 일본 총리는 의회 합동 연설에 나서지 못했다. 전범국이란 멍에와 함께 일본이 전쟁 범죄 등 과거사에 대해 분명한 사과와 화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패전국이지만 메르켈 총리 등 독일의 지도자들이 일찌감치 미 의회 합동연설에 나설 수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미 의회 지도부는 전후 70년을 맞아 미ㆍ일 동맹의 격상이란 명분을 앞세운 일본의 요구를 수용했다. 물론 미국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선 아베 총리에게 일본이 아시아에서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사 문제 해결 조치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아베 총리의 행보로 볼 때 큰 기대를 하기 힘들 전망이다. 아베 총리는 과거 식민지 지배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존 정부 담화에 대한 원론적인 수용 입장만을 밝힌 채 미ㆍ일 동맹의 미래를 강조하는 데 연설 대부분을 할애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아베 총리는 27일 오후 워싱턴 DC에 도착해 알링턴 미 국립묘지와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차례로 방문할 계획이다. 아시아 주변국에 대한 사과는 회피한 채 미국 및 서방권에 대해 평화 애호 국가 이미지 부각에 주력하겠다는 계산이다. 일본 정부는 오는 8월로 예정된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방문 때 원폭이 투하됐던 히로시마 방문도 요청하고 있는 중이다. 일본이 원폭 피해국이란 점을 부각시켜 과거사 이슈를 건너뛰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한편 아베 총리는 워싱턴DC 방문을 마친 뒤 서부로 이동, 오는 30일 샌프란시스코, 다음 달 1일 로스앤젤레스 등을 방문한다. 특히 로스앤젤레스 방문 시 일본 고속철도 신칸센의 미국 내 판매를 위한 세일즈 외교도 펼칠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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