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꿈꾸는 예비 귀농·귀촌인을 위한 조언

실패·성공사례로 본 귀농·귀촌...7단계 절차 거쳐 꼼꼼히 준비해야

예비귀농인들의 실습 장면.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귀농ㆍ귀촌하는 도시민들이 급증하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도시를 버리고 전원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4만4586가구에 달했다. 어지간한 수도권 신도시 인구와 맞먹는 규모다. 2013년 3만2424가구에서 1년 만에 40%나 급증했다. 그만큼 땅을 딛고 살고 싶고, 도시생활에 지치고, 아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싶은, 시골 생활을 통해 안빈낙도ㆍ힐링의 삶을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은퇴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들이 인생 2모작을 위해 귀농ㆍ귀촌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막상 귀농ㆍ귀촌을 하고 싶어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지 몰라 헤매는 경우가 많다. 최근 농림수산식품부가 설립한 '귀농귀촌종합센터'는 귀농ㆍ귀촌인들에게 7단계의 준비 절차를 권하고 있다. 우선 귀농ㆍ귀촌을 결정하게 되면 사전에 농업관련 기관이나 단체, 농촌지도자, 선배 귀농인을 방문하여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인터넷 귀농ㆍ귀촌카페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각종 업자들의 영업전략ㆍ사기꾼들의 농간에 휘말릴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두 번째는 가족합의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농촌으로 내려가고자 할 때 선뜻 응할 가족은 많다. 가장의 의지대로만 하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일단 가족들과 충분히 의논 한 후 합의를 거쳐 귀농ㆍ귀촌을 준비해야 한다. 특히 도시생활의 편리함에 젖은 배우자ㆍ아이들은 한적한 시골 생활을 못 견뎌 하는 경우가 많고 교육ㆍ문화ㆍ상업ㆍ의료시설 등이 부족하다는 한계 때문에 자칫 '귀농 기러기'가 되는 수가 있다. 세번째는 '작목 선택'의 단계다. 가족과 합의를 잘 마쳤다면 자신의 여건과 적성, 기술수준, 자본능력 등에 적합한 작목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관심이 가는 농산물의 품목별 출하 지역이 어딘지, 재배적지는 어느 지역인지 잘 찾아보고 선배 재배인들의 성공ㆍ실패 사례도 참고한다.네번째 단계는 영농기술 습득이다. 작목을 선택한 후에는 농업기술센터, 농협, 귀농교육 기관 등에서 실시하는 귀농자 교육프로그램이나 귀농에 성공한 농가 견학, 현장 체험들을 통해 충분히 영농기술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다음에는 정착지 물색이 필요하다. 작목 선택과 기술을 습득한 후에는 자녀교육 등 생활여건과 선정된 작목에 적합한 입지조건이나 농업여건 등을 고려해 정착지를 물색하고 결정해야 한다. 특히 경치가 좋다는 이유로 너무 심심산골이나 산간벽지, 호숫가 등을 택하는 것은 좋지 않다. 폭우ㆍ폭설 등 최악의 기상상황에도 도로 등 접근성이 떨어지지 않는 곳, 나이 들 수록 이용빈도가 잦아지는 병원이 그리 멀지 않은 곳을 선택해야 한다. 또 현재 도로가 있더라도 반드시 '맹지'여부를 확인하고, 건축법상 건축허가가 가능한 지 등을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이웃 주민들과의 관계나 텃세 극복도 중요하므로 되도록 결합도가 높은 집성촌 등은 피하는 게 좋다. 여섯번째로는 주택 및 농지 구입 단계다. 주택의 규모와 형태, 농지의 매입여부를 결정한 뒤 최소 3~4군데를 골라 비교해 보고 선택하는 것이 좋다. 부동산 업체를 통해도 되지만, 지자체가 운영하는 농지은행이나 빈집정보 사이트 등을 활용해도 좋다. 또 요즘 각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실시하고 있는 귀농ㆍ귀촌인 지원 정책을 활용하면 여러 모로 좋다. 마지막은 영농 계획 수립이 있다. 가능한 모든 변수를 고려해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영농계획을 세워야 한다. 농산물을 생산해 수익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최소 4개월에서 길게 4~5년정도 걸리므로 초보 귀농인은 가격변동이 적고, 영농기술과 자본이 적게 드는 작목 중심으로 영농계획을 수립하는 게 좋다. ◆성공 사례로 본 귀농ㆍ귀촌 성공 전략전원으로 삶터를 옮기는 이들의 특성을 살펴보면 IMF 구제금융사태 직후와 다른 특징이 있다. 파산ㆍ실직한 이들이 시골로 떠나던 때를 1990년대 말의 1차 귀농ㆍ귀촌 붐이라고 한다면 최근에는 은퇴한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자)들이 주류를 이룬다. 강원도 홍천에 정착한 박모(50)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도 "내려오길 잘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주변사람들이 귀농하겠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말린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것이 귀농ㆍ귀촌이 더이상 '도피처'가 아닌 치열한 생존 경쟁의 장이 되고 있어서다. 귀농ㆍ귀촌을 감행한 선배들은 농사만 지어서는 생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다시 도시로 돌아가거나 '철새'처럼 떠돌아다니기도 한다. 최근 귀농ㆍ귀촌의 특징은 6차산업화ㆍ정보통신기술(ICT), 네트워크 활용 ,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철학 등이다.

귀농 희망자들이 충남 아산에서 있은 귀농-귀촌현장교육 때 토마토농장을 찾아 토마토 재배에 대하여 배우고 있다.

▲농업은 첨단산업= 과거 농업이 단순 재배에 그쳐 유통ㆍ가공에서 나오는 부가가치를 도시민들에게 빼앗겼다면, 이제 농민들이 직접 가공 공장을 짓고 판매 법인ㆍ유통회사를 만들어 수익 창출에 나서고 있다. 서울에서 국제재무분석사(CFA)로 일하다가 2009년 충남 공주로 귀농한 금승원(여ㆍ48)씨가 6차 산업화에 적응해 성공한 대표적 사례다. 블루베리 심는 재미에 가끔 시골에 내려가던 금씨는 조기 은퇴 후 공주에서 블루베리를 재배ㆍ가공ㆍ판매하는 영농조합법인 '자연사랑'을 운영하며 연간 1억원의 소득을 올리는 '억대 농부'의 꿈을 이뤘다. 그는 귀농 초기부터 다양한 농가들을 섭외해 공동체를 만든 후 현지인의 숙련된 영농 노하우와 귀농인들의 컴퓨터ㆍSNS 등 마케팅 경험을 접목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소비자들의 최신 소비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사업 초기부터 소비자 그룹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해 피드백을 통한 제품 생산ㆍ체험 프로그램 개발 등에 힘쓴 것이 성공 비결로 꼽히고 있다. 최상헌 천안 연암대 교수는 "벼농사의 경우 10만㎡ 정도는 지어야 수지가 맞는데, 귀농인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ICT로 차별화하라= 광주광역시에서 살다 2013년 인근 장성군으로 이주한 박윤희(50)씨는 짧은 시간 안에 귀농에 성공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는 현재 고품질의 인삼쌈채를 안정적으로 수확해 일본ㆍ대만ㆍ중국 수출 계약도 체결하고 홈쇼핑 납품도 하는 등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처음 준비한 귀농 자금을 농지구입ㆍ개간ㆍ종묘 구입 등에 다 써버린 그는 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출을 받아 인삼쌈채 재배를 위한 시설하우스에 ICT기술이 적용된 재배 시설을 설치하는 모험을 했다.인삼쌈채 입체재배시설은 계절 별로 시설내 온도, 차광, 습도 비율이 달라지는 데다 아침ㆍ밤ㆍ낮으로 환경 제어를 해줘야 하는 '까다로운' 공정이 필요하다. 일일이 사람 손으로 할 경우 1년 365일을 내내 매달려 있어야 한다. 박씨는 스마트폰앱으로 하우스를 관리할 수 있는 ICT시설을 설치함으로써 시간ㆍ비용ㆍ노동력이라는 세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었다. 손태식 신한대학교 교수는 "ICT기술은 농업 소득을 높일 수 있는 지름길로, 최근 젊은이들이나 지식인들이 귀농을 많이 하는 것과 맞물려 바람직한 방향으로 권할 수 있다"며 "다만 농업 생산의 기본적인 기술과 지식, 재배 노하우 등 일정 조건과 기술이 축적된 상태에서 접근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네트워크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 도시에서 쌓았던 경력ㆍ노하우를 활용할 생각을 못하고, 심지어 사람들과의 인연도 끊어버리는 것은 역설적으로 귀농ㆍ귀촌 실패의 지름길이다. 오히려 도시 생활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귀농 2년만에 억대 농부의 꿈을 이룬 이상열(49) 천안 어룡농원 대표는 20년간 건설회사에서 아파트 분양에 열중했던 경력을 되살려 배나무 사전 분양과 소셜마케팅으로 승부를 걸었다. 배나무를 분양해 소득을 올리기로 마음먹고 소셜네트워크 마케팅을 통해 고객들을 모집했다. 지난해부터는 농가 민박으로 수익 사업의 범위를 넓히는 등 농업계의 '베버리힐스'로 떠오르고 있다. 귀농ㆍ귀촌 컨설턴트 박인호(50)씨는 "도시에서 일하던 전문성이나 재능, 특기와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야 수십년 전문성을 지닌 현지 농업인들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며 "자신이 살던 아파트 부녀회와 연결해 직거래 농산물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비워라, 얻을 것이다. 귀농ㆍ귀촌의 시점에서 궁극적인 목표를 '편안한 노후ㆍ전원생활'이냐 '억대 농부'냐로 정하는 것은 중요한 선택이다. 특히 50대 이후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시점에서 귀농ㆍ귀촌을 시작한 이들은 육체적 힘이 필요한 '중노동'인 농삿일에 적응하기가 어려워 억대 농부의 꿈은 이루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농촌은 자녀 교육을 비롯해 문화ㆍ상업ㆍ종교ㆍ의료 등 생활편의시설이 멀리 떨어져 있어 문 밖에 나가면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도시 생활에 익숙한 이들이 쉽게 적응하기 어렵다. 원주민들의 텃새도 만만치 않다. '농촌 인심'이란 말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특히 최근 귀농ㆍ귀촌의 주류인 50대의 경우 기존 농촌 사회에서 다수를 이루며 이미 터전을 잡고 있는 동년배들과 도시 생활과 마찬가지로 각종 분야에서 경쟁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농업 외에도 연금 등 기본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하고,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안분지족'의 자세, 먼저 내 이익을 챙기기보다는 이웃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생각하는 삶의 철학 등이 갖춰진다면 '청산에 살어리랏다'의 꿈을 이룰 수 있다. 박인호씨는 "팬션이나 오토캠핑, 관광농원, 특용작물 등 어느 것 하나 성공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도시에서 만큼의 소득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품팔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으로 농촌에 왔다가는 겨울철에 굶어 죽기 딱 좋다"며 "요즘 들어 귀농ㆍ귀촌인들도 소모적 경쟁보다는 안식과 힐링 쪽으로 가치관이 많이 변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일대 전원주택 모습 /

◆실패 사례로 본 귀농ㆍ귀촌 준비 전략#40대 초반의 A씨는 2008년 귀농을 선택했지만 5년 만에 재산 절반을 잃고 쓸쓸히 도시로 돌아왔다. 막연한 꿈을 안고 택한 전원생활의 현실은 냉정했다. 아이의 학교문제까지 겹치자 다시 한번 과감하게 도시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귀농ㆍ귀촌을 감행하는 인구가 급증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도시로 귀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A씨의 경우도 그렇다. 그는 명예퇴직으로 어수선해지고 초등학생 딸의 아토피가 심해지면서 귀농을 결심하고 아파트를 처분해 강원도 산골로 이주했다. 처음엔 집과 함께 구입한 임야에 약초를 재배하거나 채취해 생계를 유지할 생각이었다. 딸의 학교도 차를 타고 20분이면 갈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귀농 후 약초 채취나 재배는 쉽지 않았다. 경사진 임야는 너무 가팔랐고 아마추어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딸이 멀리 떨어진 중학교에 진학하자 산골에 발붙이고 살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이렇다 할 수입도 없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생활비로 쓴 데다 당초 농가를 1억원 이상 손해보고 팔았다. 네이버 전원ㆍ귀농 카페 '지성아빠의 나눔세상'에는 이같은 처절한 귀농ㆍ귀촌 실패사례가 실려있다. 실패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철저한 사전 준비ㆍ예행 연습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생계 수단 준비는 반드시 고민해야 할 문제다. 농사를 짓더라도 귀농학교ㆍ영농조합법인 취업 등을 통해 철저히 공부하고 시장의 수요를 파악해 가능성있는 작물을 선택하고 재배해야 한다. 농업 외에 펜션, 관광농원, 식당, 오토캠핑장, 기타 서비스업 등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미 전국 경치 좋은 곳은 펜션들로 가득 차 있어 레드오션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최신 유행이라는 캠핑장 시장도 정부ㆍ지자체가 만든 우수한 시설의 공공 캠핑장들이 점령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최소한 1년에서 3년 정도는 소득이 없더라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연금ㆍ저축 등의 준비를 해야 조급하지 않게 돼 실패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조언한다. 지역 텃세 문제도 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집성촌 등에 귀농했을 경우 집 건축ㆍ매매,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왕따'를 당하기 일쑤다. 특히 개인 위주에다 편리함에만 익숙한 도시 출신 귀농인들이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기존 마을 주민들과 '마을 기금 출연' 등의 문제 때문에 부딪혀 감정이 상한 후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돼 결국 이주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귀농ㆍ귀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각종 사기꾼들도 조심해야 한다. 인터넷 귀농ㆍ귀촌 카페 등에선 집을 파격적으로 싸게 지어주겠다거나 영농기술ㆍ특용작물 재배 등 정착을 도와주겠다며 접근해 사기를 치고 달아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건축법이나 농업 관련 법도 잘 알아 둬야 실패를 면할 수 있다. 귀농ㆍ귀촌 컨설턴트인 박인호씨는 "도시만큼의 소득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면서 "욕심을 내려놓고 어느 정도 '자발적인 가난'을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성아빠의 나눔세상' 운영자인 귀농ㆍ귀촌 컨설턴트 김유신씨는 "자신과 가족의 조건에 맞는 철저한 귀농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출발하시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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