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반도 지금이 절정-봄아, 여기서 멈추면 안되니…
고흥 중산에서 마주한 낙조풍경보다 가슴을 따뜻하게 한 것은 '삶의 풍경'이었다.
지금 고흥은 온통 봄빛이다. 들판의 마늘밭과 양파밭은 초록이 성성하고 보리밭도 푸르름을 더해간다.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옛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명불허전(名不虛傳). 이름이 난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는 뜻입니다. 명소라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서 그곳을 찾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다시 찾게 합니다. 전남 고흥반도가 꼭 그러합니다. 지난주 돌아보고 온 고흥 땅이 한 주도 지나기 전에 또 가고 싶어지니 말입니다. 억만년의 파도가 들숨 날숨으로 빚어놓은 2600리 해안선을 따라 바다는 옥빛 그 자체였습니다. 다도해를 배경으로 펼쳐진 올망졸망 섬들과 차진 개펄은 숨이 턱 막힐 지경입니다. 초록빛이 성성한 편백 숲은 부드럽고, 눈부신 일출과 핏빛 일몰은 황홀하기 그지없습니다. 고단한 일상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의 삶은 따뜻한 풍경을 선사합니다. 또 있습니다. 고흥반도 동쪽 남열리와 거금도의 그림 같은 바다 드라이브 코스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마치 파도가 오르내리는 듯 출렁거리는 이 길의 아름다움은 달려보면 알게 됩니다. 지금 고흥 땅의 바람 끝에도, 햇살 끝에도, 어머니 손끝에도 봄은 짙어가고 있습니다. ◇황금빛 낙조 풍경보다 '삶의 풍경'이 더 아름답다.
개펄을 물들이며 지는 중산 일몰
그 개펄에서 낙조를 만난 것은 행운이였다. 썰물로 바닷물이 밀려나가면서 남양면 중산마을 앞 차진 개펄이 드넓게 드러났다. 끝간 데 없는 개펄이 온통 황금빛으로 빛났다. 중산 일몰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이날 오전까지 하늘은 잿빛으로 가득했다. 기대 반 낙담 반으로 내달린 그곳에서 먹구름을 밀쳐내고 붉은빛으로 옷을 갈아입는 바다와 개펄을 만났다. 바다 위에 주황색의 물골이 생기고 개펄의 웅덩이마다 반짝반짝 보석이 담겼다. 어느새 해가 섬 뒤로 몸을 감추기 시작한다. 낙조라면 이글거리는 해가 선명하게 수평선으로 잠기는 모습이 으뜸이라지만 중산 일몰은 해가 구름 뒤로 숨어 버린다 해도 그 맛이 조금도 덜하지 않다. 오히려 해가 넘어가는 순간보다는 해가 다 떨어지고 난 뒤에 하늘과 구름을 갖가지 색으로 물들일 때가 더 황홀하다. 내일 또 새로운 일몰을 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안타까움마저 황홀하다.
촌로가 개펄에서 수확한 바지락과 굴을 지게에 담아 개펄을 지난다.
중산에서 마주한 황금빛 낙조 풍경보다 가슴을 따뜻하게 한 것은 '삶의 풍경'이었다. 촌로가 지게를 지고 물골을 따라 개펄을 지난다. 그 뒤로 아내가 따른다. 촌로는 아스라이 멀리까지 나가 개펄에 손을 넣어 제철을 맞은 바지락을 캐서 지게에 한 짐씩 싣고 집으로 향한다. 탱글탱글 속살을 키운 굴도 한 자리 잡았다. 질벅거리며 미끌미끌 발목을 붙잡는 개펄 위를 무거운 지게를 지고 물골을 따라나온 촌로의 표정은 밝다. 고된 노동으로 수확한 바지락과 굴은 내다 팔아 양식을 사거나 자식들을 위해 사용할 터이다. 갯가 일을 마친 할머니들도 하나둘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그 뒤로 황금빛 노을이 긴 그림자를 그린다. ◇편백 숲에 들면 초록빛 기운이 폐부를 감싼다.봄기운을 느끼겠다면 우람한 나무둥치와 초록의 관목들이 빼곡히 산자락을 메운 편백나무와 삼나무 숲길을 걸어보자.구름도 쉬어간다는 팔영산(608.6m)국립공원으로 간다. 팔영산은 암릉 타는 재미가 각별한 산이다. 몇몇 봉우리는 '네 다리'로 기어올라야 할 만큼 험하기도 하다. 암봉의 표면 또한 팥 시루떡처럼 투박하고 거칠다. 하지만 일단 올라서면 조망 만큼은 탁월하다. 이 팔영산 자락에 편백나무 숲이 있다. 성기지구와 금사지구 등에 약 416㏊에 달하는 편백 조림지로 수령 30년생들이 쭉쭉 뻗어 있다.
처연하게 낙화한 능가사 동백
숲으로 가는 길은 우선 능가사에서 시작한다. 대웅전(보물 제1307호)과 주역 팔괘를 새긴 동종(보물 제1557호) 등으로 이름난 절집이다. 한창 물오른 벚꽃과 처연하게 낙화한 동백이 어우려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든다. 절집에서 오른쪽으로 약 2㎞ 정도 오르면 저수지가 나오고 편백 숲이다. 초록의 기운을 뿜어내는 촉촉한 숲길에 들면 나무 향이 코를 찌른다. 피톤치드의 향기가 어찌나 짙은지 정신이 다 아찔해질 정도다. 편백나무는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함유하고 있다. 팔영산 편백 숲 코스는 3.5㎞ 정도로 타박타박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린다. 피톤치드는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 사이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하니 꼭 시간에 맞춰 가는 게 좋다. 팔영산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외나로도의 봉래산(410m)이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한쪽 사면에 30m가 족히 넘는 90년생 삼나무와 편백나무 9000여 그루가 사철 푸른 모습으로 바다를 마주 보고 도열해 있다.
팔영산 편백숲
봉래산은 해발 400m가 넘지만 거의 산허리쯤에 들머리가 있어 느긋하게 돌아볼 수 있다. 산행 코스에서 일부 구간을 살짝 비껴서 편백나무와 삼나무 울창한 숲을 지나는 도보코스가 있다. 편백 숲에선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한순간 사라지고 답답했던 마음도 뻥 뚫린다. 천등산(563m)은 봄날 철쭉으로 유명하지만 정상 아래의 금탑사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39호)도 이에 못지않다. 3000여 주의 비자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섬, 바다, 들녘 어딜가도 알록달록 봄빛이 익어간다.
고흥반도 바닷길을 달리는 버스가 정겹다
요즘 고흥 어디나 봄빛이 완연하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해안도를 따라 초록으로 물결치는 마늘과 양파밭은 진즉부터 성성했고 여기다 보리밭도 푸름이 더해가고 있다. 고흥에서는 어디로 향하든지 이런 초록의 풍경으로 가득 차 있다. 시야에 보이는 풍경은 액자에 가두어 두면 그것 그대로 '봄의 풍경'이 될 정도다. 먼저 남열해안도로를 달린다. 영남면 양사리에서 우암마을까지는 우뚝한 해안절벽의 중턱을 지나는 해안로가 들쭉날쭉 장관이다. 바다와 맞닿은 기암절벽에 부셔지는 파도의 포말이 물안개처럼 피어나고 초록빛 들판과 노란 유채꽃이 반짝인다.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인 이곳은 수평선 위로 불끈 솟아오르는 해돋이로 유명하다. 남열해수욕장에서 보는 일출도 좋지만 통일발원지공원에 있는 우주발사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더 압권이다. 나로도 방면으로 길을 잡으면 외나로도의 나로우주센터와 우주과학관, 나로도항, 내나로도의 국립고흥청소년우주체험센터 등을 만날 수 있다. 2009년 나로우주센터가 준공돼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3번째로 우주센터를 보유한 국가가 됐다. 우주센터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지만 우주센터 입구의 우주과학관은 가보자. 제1전시관은 우주과학의 기본 원리와 로켓, 제2전시관은 인공위성과 우주공간에 대해 알려준다. 과학관의 전시물들은 그것만으로도 우주를 향한 꿈이 샘솟게 만든다.
남열 일출
남쪽의 거금도는 이즈음에 놓쳐서는 안 될 곳이다. 고흥 팔경 중의 하나로 꼽는 거금도 해안일주도로의 풍광은 말할 것도 없다. 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파성재 능선을 따라가다 굽어본 바다 건너 고흥반도 쪽의 풍경은 기가 막히다. 금산면에서 바라보는 해안 절경은 단연 으뜸이다. 연륙교를 건너 오천 쪽으로 달리다보면 오른편으로 다도해의 비경이 한 눈에 펼쳐진다. 바다 위에 뭉게구름이라도 곁들어지면 그 어떤 천하의 산수도 부럽지 않다. 거대한 인공호수인 고흥호는 최근에 뜨는 곳이다. 방조제 길이는 약 2.9㎞. 간척지 안에는 시원하게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길이 사방으로 뻗어 있다. 길 양옆으로 벚꽃과 유채꽃이 도열해 장관을 이룬다.
고흥반도에서 마주한 봄풍경(남열 해안도로, 알록달록한 옥룡마을길, 초록빛이 더해가는 들녘, 능정마을-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고흥반도 동쪽 포두면 옥강리에서 오도를 거쳐 영남면 금사리까지 이어지는 해창만 간척지도 멋진 드라이브 코스다. 방조제를 따라 늘어선 갈대밭은 일몰이면 황금빛으로 물든다. 고흥=글ㆍ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여행메모▲가는 길= 수도권에서 가면 호남고속도로 주암IC에서 27번 국도와 15번 국도를 갈아타고 벌교를 지나면 고흥반도다. 벌교를 벗어나 고흥읍내까지는 차로 30분 정도. 읍내에서 나로도나 거금도까지 가려면 40분~1시간 이상 걸린다. KTX 호남선 개통으로 용산역에서 순천역까지 2시간30~50분 소요된다. 순천역에서 렌터카를 이용하면 고흥읍내까지 30여분 걸린다.
고흥반도
▲먹거리= 고흥의 먹거리라면 단연 활어회. 녹동항에 활어 중매인들이 운영하는 횟집들이 많다. 읍내에 있는 홍도장어구이(061-835-6500)에선 장어구이와 장어탕이 깔끔하다. 해산물 한정식집인 중앙식당(061-832-7757)은 음식이 푸짐하게 잘 나온다. 거금도 월포식당(061-842-8425)은 고흥의 특산물이 매생이를 이용해 떡국과 칼국수를 내놓는데 맛이 담백하고 먹을만하다. ▲볼거리= 3곳의 사립 미술관이 봄나들이에 좋다. 남포미술관과 연홍미술관, 도화헌미술관 등이 그곳. 시대의 슬픔과 애환이 서려 있는 사슴을 닯은 섬 소록도도 있다. 녹동항과 거금도 중간에 놓인 소록도에는 한센병 치료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있다. 병원 건물 근처 소록도 생활자료관에 들어가면 역사, 소록도의 자연, 원생의 생활 모습, 사건과 인물, 문예작품 도서 등등의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 한센병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소중한 공간이다.
김일체육관에 전시된 챔피언밸트와 가운
호랑이, 갓, 곰방대 그려진 가운 입고 팔척 장신 외국인 선수들을 박치기 한방에 퍽퍽 쓰러뜨리던 프로레슬링의 전설 김일의 고향인 거금도에 김일체육관도 있다. 시호도 원시체험의 섬에선 직접 원시인이 되어 부족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축제=과학과 우주가 자연스럽게 교육과 연계되는 에듀테인먼트 축제가 고흥에서 열린다. 오는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고흥으로 떠나는 신나는 우주여행'이 펼쳐지는 것.
우주발사전망대
박지성 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이번 축제는 모형로켓 발사체험, 에어로켓 만들기 체험, 미니로봇체험, 우주항공 체험행사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마련된다.특히 나로우주센터 발사기지 견학, 우주항공 스탬프 랠리, 별자리 관측 등은 인기만점 프로그램이다. 우주항공축제는 우주과학관련 대표축제로 매년 1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061-830-5305)<ⓒ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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