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선 이런 레슬링 안합니다

첫 국가대표 부부 레슬러 공병민-이신혜 커플의 특별한 신혼
고교때부터 교제, 지난해 11월 결혼…신혼여행 미루고 훈련, 대표자격 따내

한국 레슬링의 첫 번째 '부부 국가대표'가 된 공병민과 이신혜의 웨딩사진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신혼여행도 생략했는데 다행이에요." 결혼 행진하듯 손을 맞잡고 경쾌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신혼집은 태릉선수촌이다. 새내기 부부에게 한편으론 낯설고 한편으로 낯익은 곳이다. 레슬링 남자 자유형 74㎏급의 공병민(24ㆍ성신양회) 씨와 여자 자유형 53㎏급의 이신혜(23ㆍ서울중구청) 씨. 선수촌에서 두 사람은 신혼부부이기에 앞서 당당한 국가대표 선수다. 한국 레슬링 최초의 '부부 국가대표'. 이전에는 대표선수를 위한 훈련 파트너로 태릉에 자주 왔지만 이번엔 느낌과 각오가 다르다. 두 사람을 지난 8일 만났다.공병민 씨는 지난달 25일 강원도 양구군 양구문화체육관에서 열린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 오만호(26ㆍ울산남구청), 김대성(35ㆍ수원시청) 등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1차 선발전에서 우승한 이신혜 씨도 다음날 장호순(27ㆍ서울중구청) 선수의 기권으로 국가대표가 됐다. 둘은 지난해 11월 8일 결혼했다. 신혼여행을 미루면서까지 훈련에 전념해 맺은 값진 결실이다.신혼의 달콤함은 잠시 잊기로 했다. 레슬링 국가대표는 남자와 여자 선수의 훈련장이 분리돼 있다. 숙소도 다르다. 식사시간이나 훈련이 끝나는 저녁에야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대회가 닥치면 이마저도 어렵다. "괜찮아요. 처음 겪는 일도 아닌데요." 듀오는 7년 전 부산체고에서 교제를 시작했을 때부터 많은 제약을 받았다. 이신혜 씨는 "주위의 눈이 곱지 않았다. 성적이 부진했다면 혼나는 날이 많았을 것"이라며 "결혼을 하면 시선이 달라질 것 같아 조금 서둘렀다"고 했다. 공병민 씨는 "운동을 소홀히 한 적은 없다. 오히려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더 열심히 훈련했다"고 했다. 그는 "누구보다 아내가 내 일을 잘 이해해준다. 생각과 배려가 남달라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 레슬링의 첫 번째 '부부 국가대표'가 된 공병민과 이신혜의 웨딩사진

둘은 비슷한 점이 많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운동을 시작했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국내 정상을 꿰찼다. 이신혜 씨는 "아버지가 목회 활동을 하셔서 생활이 어려웠다. 레슬링은 의식주를 해결해준 고마운 운동"이라고 했다. 그의 오빠 이영범(31) 씨는 프로복싱 슈퍼페더급 한국챔피언을 지내기도 했다. 공병민 씨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레슬링에 뛰어들었다. "금정중학교에 입학했는데 레슬링을 해야만 학비가 면제됐다. 고민할 필요 없이 매트를 굴렀다." 그런 남편에 대해 이신혜 씨는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산전수전을 겪으며 정상에 올랐잖아요. 힘든 운동을 하는 저에게 안식처가 돼줘요. 상대를 분석하거나 작전을 짜는데도 도움을 주고요."이제는 다른 종목 선수들까지 부러워하는 커플이 됐다. 이신혜 씨는 결혼 전 남편을 위해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을 30일 앞두고 태릉선수촌에서 마련한 '격려의 밤' 무대에서 남편에게 청혼반지를 건넸다. "청혼이 미뤄지니까 따로 준비를 했더라고요. 모든 선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잘 살겠다고 약속했죠." 하지만 여전히 애정을 표현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최종 선발전에서 고함을 질러가며 아내를 응원하는데 은근히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하나뿐인 내 사랑인데."

한국 레슬링의 첫 번째 '부부 국가대표'가 된 공병민과 이신혜의 웨딩사진

부부는 이제 태릉선수촌에서 세계 정상에 도전한다. 임신 계획도 미룬 이신혜 씨는 "결혼하면 기량이 준다는 편견을 깨겠다.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여자 자유형 53㎏급의 최고 선수가 되겠다"고 했다. 공병민 씨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걸어 침체된 레슬링 자유형에 활기를 불어넣고 싶다"고 했다. 당장의 목표는 9월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메달을 정조준한 부부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핀다. "이번처럼 좋은 성적을 낸다면 라스베이거스가 신혼여행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꼭 그렇게 만들어볼게요."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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