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조근현 감독 '박용우는 분석적, 김서형은 동물적 연기' (인터뷰)

[아시아경제 유수경 기자]영화 '봄'은 자극적인 영화가 쏟아지는 극장가에 그야말로 단비 같은 작품이다. 삶의 의미를 잃은 조각가가 진정한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해 눈뜨는 내용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렇다 해서 지루한 예술 영화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잔잔하면서도 역동적인 장면들 속에 가슴을 치는 울림이 있다.'26년'을 통해 짜임새 있는 연출력을 선보인 조근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미술을 전공한 감독은 준구(박용우 분)의 휘몰아치는 감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예술'에 대해 잘 모르는 관객들도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며 자연스레 영화에 감정이 이입된다. 작품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말을 배경으로 한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최고의 조각가 준구, 끝까지 삶의 의지를 찾아주려던 그의 아내 정숙(김서형 분), 가난과 폭력 아래 삶의 희망을 놓았다가 누드모델 제의를 받는 민경(이유영 분), 이 세 사람에게 찾아온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관한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를 통해 무엇보다 신인 여배우 이유영이 크게 주목 받았다. 그를 발굴한 조근현 감독은 최근 아시아경제와 만나 "나는 만들어내기보다는 발견해내는 성향의 감독이다"라며 "어느 배우를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지점들을 발견해내고 그걸 끄집어내서 또 한 번 마음껏 하게 해준다. 단, 강요하지 않고 대신 이 사람들이 온전히 캐릭터화되서 연기와 실제 경계가 없는 상황으로 가는 게 제일 좋은 거 같다"고 털어놨다.그는 이유영의 연기도 놀랍지만 사실은 박용우와 김서형의 연기가 더욱 놀라운 지점들이 많다고 했다. 조 감독은 "신인배우는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볼 수 있기에 작품을 잘 만나면 잠재된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다"며 "오히려 기성 연기자들이 불리한 나라다. 패턴 연기를 시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감독은 이번 작품을 함께 한 세 명의 배우가 크게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박용우는 공부를 많이 하고 교양이 풍부한 사람으로, 표면적 연기가 아니라 심도 깊게 캐릭터를 분석하는 타입이라고. 반면 김서형은 동물적 감각으로 연기를 한단다."극중 정숙이 뚝방길을 걷는 장면에서 저는 빙글빙글 돌라고 주문한 적이 없어요. 이 영화에서 구현하려고 한 공간과 그런 걷는 모습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슬픈 느낌을 갖고 싶었죠. 그걸 구현하고 싶었는데, 서형씨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한 번에 '오케이'를 했어요. 그 장면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서형씨는 그 장면을 못 봐요. 정숙의 감정이 떠오르는지 자꾸 울더라고요." 더불어 조근현 감독은 '감각은 고도의 계산'이라고 했다. 많이 고민한 논리와 계산이 경지를 넘어가면 감각이 되어가는 거라고. 배우들의 좋은 연기가 나오기 위해서는 좋은 디렉션이 아니라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감독의 생각이다. "현장에 누구보다 먼저 와서 자기가 찍을 공간을 분석하고 익숙해지는 게 중요하죠. 낯선 공간이 감정을 표현하는데 방해가 안 돼야 해요. 우리나라 현장은 현실적으로 그런 게 어려워요. 스태프들이 준비하고, 배우는 제일 늦게 현장에 오죠. 생소한데서 연기를 하면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현장은 저와 배우들이 가장 먼저 현장에 와서 리허설을 해요. 그러면 촬영 조명 팀들도 감이 생기고 불필요한 시간들을 줄일 수가 있거든요."'봄'의 흥행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건, 앞으로도 아름다운 영화들이 많이 탄생하는 발판을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해외에서 먼저 알아봤다. 지난 1월 산타바바라 국제 영화제를 시작으로 아리조나, 밀라노, 달라스, 마드리드, 광주, 도쿄 등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 여우주연상, 촬영상 등을 휩쓸었다. 지난 5일에는 밀라노 국제영화제 대상(Best Film)을 거머쥐며 다시 한 번 진가를 입증했다.조 감독은 "미술감독을 하던 시절에 진짜 예쁘고 아름다운 영화가 투자가 안 되서 제작되지 못하는 걸 많이 봤다. 영화는 다양해야 한다. 어느새 한국영화가 한쪽 방향으로 치우쳐있는 느낌이 든다"며 "이 영화가 흥행해서 앞으로도 다양한 좋은 영화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유수경 기자 uu84@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대중문화부 유수경 기자 uu84@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