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수 통계청장
공 하나에 울고 웃는 때가 왔다. 이른바 월드컵 시즌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에게 월드컵 하면 누가 뭐라 해도 4강 신화의 역사를 쓴 2002 한일월드컵이겠으나, 그 후로도 월드컵은 두 번 더 치러졌고 이제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월드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축구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통계인의 입장에서 볼 때도 축구는 매우 매력적인 스포츠다. 더구나 월드컵이라는 최고의 축제를 맞이할 때면 축구에 대한 이런저런 흥미 있는 통계를 다룬 이야깃거리에 눈이 가곤 한다. 통계라는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축구에는 분명 색다른 맛이 숨어있다. 더불어 이런 기회를 통해 그동안 딱딱하게 여겨졌던 통계가 실은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으며 우리 삶을 훨씬 더 풍요롭게 만드는 도구라는 점 또한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축구와 통계의 찰떡궁합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사이먼 쿠퍼가 쓴 책 '사커노믹스'에 따르면 2006년 독일 월드컵 8강전 독일과 아르헨티나의 경기는 연장전 끝에 1:1을 기록하며 결국 승부차기로 이어졌고 당시 독일의 골키퍼 옌스 레만은 양말에 컨닝페이퍼를 넣고 등장했다. 그 종이쪽지에는 아르헨티나 주요 키커들의 페널티 킥 습관이 적혀 있었다. 독일 대표팀은 1만3000번의 페널티 킥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그 자료들을 통계화했다. 그 결과가 레만이 들고 나온 쪽지인 것이다. 당시 쪽지에 적혀 있던 선수들 중 실제로 승부차기에 나온 선수는 단 두 명, 그러나 그 두 명에 대한 통계자료가 독일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결국 독일은 그 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승부차기가 결코 우연과 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독일팀은 여실히 보여줬다. 이를 통계의 승리라 한다면 지나친 비약이 될까? 6월에 열리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벨기에, 알제리, 러시아와 함께 H조에 속해있다. 첫 원정 8강을 목표로 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16강이라는 첫 관문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16강 진출 확률은 얼마나 될까? 월드컵이 가까워지면서 전 세계 언론사와 스포츠 채널, 심지어 도박사이트에서도 이런저런 예상치를 내놓고 있다. 미국의 스포츠채널 ESPN은 벨기에 79.2%, 러시아 73.0%에 이어 한국의 16강 진출 확률을 36.7%로 낮게 전망했다. 반면 미국의 CBS는 벨기에를 제외한 나머지 3개국의 진출 가능성이 엇비슷하다고 예상했다. 한마디로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외신의 눈으로 볼 때 FIFA 랭킹을 비롯한 한국의 객관적인 전력이 그다지 높게 평가할 만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누군가? 월드컵 본선대회 1승에 목말랐던 나라가 4강 신화를 쓰지 않았던가? 그 엄청난 경험은 분명 우리 DNA에 잠재해있다. 축구에 대한 재미있는 통계는 또 있다. 월드컵 다음 해에 출산율이 약간 상승한다는 것이다. 독일 월드컵 다음 해인 2007년도에는 출산율이 0.13명 증가했고, 남아공 월드컵 이듬해에도 전년도 대비 0.02명 증가를 보이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같은 현상이 올림픽보다는 월드컵에서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더 많은 데이터가 쌓여야겠지만, 우리의 낮은 출산율을 감안하면 올해 브라질 월드컵이 더욱 기대되는 게 사실이다. 반면 월드컵이나 유러피언 챔피언십 같은 축구 대회가 자살률을 낮춘다는 통계도 있다. 독일의 경우 1992년, 1994년, 1996년 독일 대표팀이 축구 대회에 나가있는 동안 평균 자살자 수가 유의미하게 줄었다. 노르웨이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 조사가 이루어진 1988년부터 1995년 사이에 노르웨이는 딱 한 번 1994년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고 이 기간의 자살률이 8년간 최저를 나타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대회가 끝나고 나면 자살률이 더 높아지는 것 아니냐고. 그러나 그 해 전체의 자살 건수가 감소했다는 사실로 볼 때 국제적인 축구 대회가 자살 예방에 기여하는 점이 분명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통계와 관련해 이번 월드컵에서 한 가지 듣고 싶지 않은 말이 있다. 바로 '경우의 수'이다. 우리는 그간 16강 진출을 간절히 염원하며 전 국민이 각종 경우의 수를 따지곤 했던 때가 적잖게 있었다. 다른 팀의 성적까지 계산하며 실낱같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 경험에서 이번만큼은 자유롭고 싶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승리의 소식에 잠은 좀 설쳐도 마냥 행복한 월드컵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유럽에서 조사한 것이지만, 축구 대회는 개최국 국민들의 행복도를 상승시킨다는 결과가 있다. 각종 대형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면서 경제적 파급 효과와 관련한 이야기는 많이 나오곤 했지만 행복도가 높아졌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물론 스포츠에 대한 관심, 문화적 배경에 따라 같은 결과가 나온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멋진 플레이를 펼치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볼 수 있는 월드컵은 분명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리고 통계는 그런 월드컵과 축구를 한층 더 재미있고, 가치 있게 만든다. 이번 월드컵에는 또 어떤 흥미진진한 통계자료들이 나오게 될지 자못 기대가 크다. 박형수 통계청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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