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뀌고, 장관 바뀌면 퇴출 일쑤기업 간 친구들과 연봉비교하면 상대적 박탈감끈과 줄 붙잡아 '퇴직후 일자리' 골몰[아시아경제 이윤재 기자] 모피아, 금피아, 해피아, 원전마피아. 이들이 생겨난 이유로 공무원들은 '퇴로 부족'을 꼽는다. 피라미드 꼴인 관료조직에서 밀려난 이후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기 때문에 산하기관이나 협회 등을 찾아 자리를 옮긴다는 것이다.이들 공무원의 말도 일면 일리가 있다. 국가공무원법 74조에서 '공무원의 정년은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60세로 한다'고 정년을 보장하고 있지만 보직을 받지 못하는 서기관(4급), 부이사관(3급)이 공직사회에서 버티고 있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부이사관에서 고위공무원으로 한 걸음 더 내딛기 위해서는 업무 뿐 아니라 내부관계에서도 소리 소문 없는 움직임을 만들어야 한다. 그 사이에 학연, 지연, 혈연 등의 연결고리가 작동하기도 한다.운이 좋아, 혹은 능력이 출중해서 고위공무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해도 생존은 쉽지 않다. 고위공무원으로 앉게 되는 보직은 대개 1년, 길어야 2년 안에 물러나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물러나고, 장관이 바뀌면 또 자리를 내주는 게 일반화 돼 있다. 여기서 물러나면 공무원 조직 내에서 퇴로는 더 이상 없다. 대통령령인 '고위공무원단 인사규정'에 따르면 고위공무원단으로 있으면서 1년간 보직을 받지 못하면 자리를 떠나야 한다.때문에 협회든 산하기관이든 옮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일자리를 찾아 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게 대부분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논리다. 여기에는 지금껏 박봉(薄俸)으로 힘들게 지내왔는데 '이제 돈을 좀 벌어봐야겠다'는 심리도 깔렸다. 세종시 한 중앙부처 고위공무원은 "다른 친구들 외제차 타고 다니는데 나는 10년도 더 된 차를 아직도 끌고 다닌다"면서 "퇴직하면 로펌이든 기업이든 진출해서 노후자금 좀 마련해야 되지 않겠나"고 귀띔하기도 했다.같은 고등학교, 같은 대학을 나온 친구들이 기업으로 진출해 고액연봉을 받는 것을 지켜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의 괴리에서 생겨나는 박탈감이다.이런 공무원들의 심리가 '적폐(積弊)'의 발단이다. 이에 대해 일부 공직자들 사이에서는 "연금이나 복지 수준 등을 따지면 '공무원 프리미엄'이 없는 것도 아니다"면서 자성을 목소리를 내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따지고 보면 그간 공무원들이 누린 호사는 적지 않다. 연간 350조원이 넘는 예산을 주무르고, 대한민국 평균 이상의 연봉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퇴직 후에는 일반 국민들이 받는 국민연금에 비해 더 큰 금액을 연금으로 받는다. 본인들이 느끼지 못하는 공무원 후광 효과도 적지 않다. 일례로 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을 때도 공무원은 '우대 금리'를 적용 받고, 법적인 분쟁이 발생했을 때도 상대를 위축시킬 수 있게 만드는 것도 현실이다. 사소하게는 결혼시장에서도 행정고시 합격자는 상위 등급에 올라 있다.공무원들도 이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4월부터 약 두 달간 49개 중앙행정기관 국가공무원과 16개 광역자치단체 지방공무원 등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공무원과 민간기업 종사자에 대한 비교 결과 공무원은 ▲신분보장 ▲노후생활보장 ▲사회적 지위 등에 유리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특히 공무원연금은 개혁의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논란을 불러왔다. 가입기간 중 평균 소득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금액과 대비해 연금을 받는 액수를 말하는 소득대체율에서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국민연금을 40년간 부은 사람의 소득대체율은 40%에 불과하지만 33년간 공직 생활을 한 사람의 소득대체율은 60%가 넘는다. 지난해 기준 공무원연금의 1인당 월평균 수령액은 219만원이었다. 이에 반해 국민연금의 월평균 수령액은 84만원에 불과했다.유족연금도 국민연금이 불리한 형태로 구성돼 있다. 공무원연금의 경우 남편이 사망할 경우 부인이 남편의 연금 70%를 유족연금으로 받을 수 있지만 국민연금은 부부 가입자의 경우 사망한 배우자의 연금을 선택하면 본인 연금은 받을 수 없다. 1가구 1연금 정책의 영향이다.정부 예산을 다룬다는 것도 일종의 권력이다. 여기에 공공기관 예산, 기금 등을 감안하면 공무원들이 한 해 다루는 돈의 규모는 1000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최고 기업으로 평가되는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이 229조원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상상을 뛰어넘는 금액이다. 이런 돈의 향방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공무원들의 영향력이 상당하고, 그것이 '공무원'이라는 직업 선택에 직ㆍ간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이같은 영향 때문에 공무원들의 직장생활 만족도는 50%를 넘는다. 행정연구원의 조사결과 공직생활의 만족정도는 50.8%가 '만족'인 것으로 집계됐다. 연구를 진행한 권혁빈 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대체적으로 '불만족한다'는 응답보다는 '만족한다'고 응답한 공무원들이 많았다"고 평가했다.세종=이윤재 기자 gal-ru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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