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왕벚꽃, 녹산로 8km 유채꽃길, 초지를 뛰노는 야생노루, 동백꽃 핏빛낙화
지금 제주를 찾는 다면 절정의 '색깔있는 섬'을 만날 수 있다. 제주도가 원산지인 연분홍빛 왕벚꽃, 한라산 중산간 녹산로 8km 유채꽃과 벚꽃, 초지를 뛰노는 한라산 야생노루떼, 낙화가 더 아름다운 핏빛 동백(사진 위쪽부터)
[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봄비가 내립니다. 화르르 온몸을 불사르듯 피웠던 붉은 동백은 처연한 낙화를 시작했습니다. 떨어진 동백꽃잎들이 선혈처럼 낭자하게 땅과 돌담을 물들입니다. 동백의 낙화에 맞춰 샛노란 유채꽃과 연분홍 왕벚꽃이 활짝 피어났습니다. 한라산 중산간도로를 달려봅니다. 8km에 이르는 녹산로 유채꽃길과 벚꽃이 일렁이며 따라옵니다. 그 길을 따라 더 넓은 초지를 걷는 말과 봄날의 싱그러움을 만끽하는 한라산 노루들이 평화롭습니다. 이렇듯 비내리는 봄날의 제주는 맑고 화창한 날보다 오히려 더 운치있고 담백하고 낭만적입니다. ◇한라산 중산간 녹산로 유채꽃과 더 넓은 초지의 평화한라산의 능선과 올라오는 들판이 만나는 곳. 그래서 산도, 들도 아닌 곳을 제주에서는 '중산간'이라고 부른다. 사철 푸른 삼나무와 오름의 부드러운 구릉과 드넓은 초지의 목장, 8km에 이르는 유채, 벚꽃길이 황홀하다. 중산간은 어느 때 찾아도 좋지만 굳이 이 봄날에 추천하면 한라산의 능선이 흘러내린 동쪽의 표선읍 가시리 일대다. 지금 가시리의 중산간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양옆으로 벚꽃과 어우러진 샛노란 유채꽃이 융단을 이루며 일렁이고 있다. 출발은 가시리 사거리다. 여기서부터 큰사슴이오름을 비껴서 교래리 쪽으로 넘어가는 도로가 '녹산로'다. 곳곳에 빼어난 길을 여럿 가지고 있는 제주에서도 봄이면 '가장 아름다운 길'로 손꼽힌다. 이 길을 장식하는 건 유채꽃이다. 겨울 성산 일대에서 만나는 유채꽃은 사실 관광객들을 위해 심어놓은 장다리 꽃이다. 4월 유채는 장다리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밝고 화사하다. 장다리꽃이 칙칙한 노란빛을 띤다면 유채는 태양처럼 눈부시다.
녹산로의 유채꽃과 삼나무숲 그리고 제주말
녹산로의 왕복 2차로 도로 양옆으로 화려한 유채꽃이 가득 피어났다. 유채꽃 뒤편에 도열한 벚나무까지 연분홍빛 꽃을 피워 그 화려함은 절정이다. 녹산로가 지나는 길옆에는 정석비행장이 있다. 대한항공이 조종사들의 교육을 위해 1998년 활주로를 놓은 비행장이다. 활주로와 관제탑, 항공기도 이색적이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이 비행장을 둘러싸고 있는 제동목장이다. 삼나무를 심어 구획해놓은 목장은 싱그러운 봄날의 초지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자유롭게 방목 중인 소들이 느릿느릿 풀을 뜯고, 한라산에서 내려온 노루들이 봄날의 야생을 만끽하고 있다. 삼나무숲 사이를 걷다보면 예닐곱 마리씩 무리 지어 움직이는 노루 떼도 볼 수 있다. 인기척에 놀란 노루가 이쪽을 바라보다 카메라 셔터 소리에 놀라 일순 숲으로 사라진다. 아무런 경계가 없는 공간에서 야생의 생명과 마주한 기분은 참 평화롭고 신비롭다.
초지에서 봄을 만끽하는 한라산 노루
◇비밀의 화원, 원산지 왕벚꽃의 격이 다른 유혹펑 펑~팝콘이 터지듯 벚꽃이 화르르 피워났다. 이상고온탓에 벚꽃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국에서 활짝 꽃을 피웠지만 제주에서 마주한 벚꽃은 그 느낌부터 다르다. 바로 왕벚나무다. 꽃잎이 크고 화사한 왕벚나무는 원산지가 제주도다. 제주시 봉개동에 오래된 왕벚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159호)가 있고 제주 곳곳에도 아름드리 왕벚나무 꽃길이 있다. 왕벚은 화사하고 탐스럽다. 더디 피지 않고 2~3일 사이에 확 피어난다. 벚꽃이 질 때는 더 아름답다. 바람에 꽃비처럼 흩어지는 벚꽃은 빛을 발산하는 반딧불이만큼 화려하다. 이때 제주의 봄은 절정을 맞는다. 벚꽃 명소로 전농로와 제주대학교 진입로, 제주종합경기장이 첫손에 꼽힌다. 옛 도심지에 자리한 전농로는 제주의 대표적인 벚꽃 거리로 교보생명부터 남성오거리까지 1.2km 구간에 걸쳐 있다. 꽃 피는 시기가 되면 좁은 2차선 도로가 벚꽃 물결로 일렁인다. 벚꽃이 만발할 때면 황홀한 꽃 터널이 펼쳐진다.
제주종합경기장의 왕벚꽃
제주대학교는 꽃이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 아래 피크닉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특히 정문까지 1km에 이르는 진입로 양쪽에 벚나무가 늘어서 드라이브 코스로도 그만이다. 제주종합경기장은 주변에 벚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비밀의 화원처럼 노란 유채꽃과 왕벚꽃, 초록의 초지가 어우려져 황홀하다. 꽃잎이 흩날리는 나무 사이로 산책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제주왕벚꽃축제'가 열리는 행사장이기도 하다.◇동백(冬栢)엔딩 낙화가 더 아름답다한겨울에 꽃을 피어 봄날까지 지고 피고를 거듭하는 동백은 겨울꽃이지만 사실 가장 아름다울때는 낙화무렵이다. 봄의 춘기가 퍼지기 시작하며 동백들이 화르르 불붙듯이 타올랐다가 일제히 고개를 떨군다. 여기에 봄비라도 더한다면 아름다움은 배가된다. 한 시인은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 동백꽃을 보라/지상의 어떤 꽃도 그의 아름다움 속에다 저토록 분명한 순간의 소멸을..."이라고 노래하기도 했다.
위미리 마을 동백숲의 낙화한 동백
제주에서라면 구태여 찾아갈 필요 없이 어디서나 돌담을 두른 마을 어귀에서 동백꽃을 만날 수 있다. 도로변에 가로수처럼 심어진 동백나무도 흔하디흔하다. 그윽한 동백을 만나 볼 요량이라면 선흘곶자왈을 추천한다. 꼭 동백이 아니어도 곶자왈은 나무와 덩굴식물, 암석들이 뒤섞여 성성한 초록으로 빛나는 숲을 이른다. 선흘곶자왈의 상록림 터널을 걸으며 낙화한 동백과 아직 성성하게 매달린 동백을 만날 수 있어 정취가 그만이다. 민가의 돌담과 어우러져 피어나는 동백은 남원읍 위미리의 동백숲이 좋다. 이즈음 수령 130여년 된 동백나무 500여그루가 마을 곳곳에서 붉은 꽃을 떨구고 있다. 숲의 규모는 작지만 짙게 드리운 초록의 숲 그늘 속에 떨어진 꽃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떨어진 동백꽃잎들이 선혈처럼 낭자하게 땅과 돌담을 물들이는 모습은 장관이다. 제주=글 사진 조용준 기자 jun21@asiae.co.kr ◇여행메모
제주도 봄꽃 여행지
△가는길=녹산로 유채꽃길은 제주공항에서 오라오거리, 서광로, 국립박물관 사거리에서 표선, 봉개동 방면으로 가다 대천동사거리에 우회전 비자림로, 제동목장입구로 간다. 네비게이션은 정석항공관으로 검색.
몸국
△먹거리=제주의 먹거리는 사람들 입맛에 따라 호불호가 확실해 추천하기가 조심스럽다. 한라산 중산간 유채꽃을 보고 난 후라면 가시리마을의 명문사거리식당(064-787-1121)이 좋다. 현지인들도 추천하는 제주 돼지고기의 참맛을 즐길 수 있다. 생고기, 몸국(삶은 육수에 모자반을 넣어 끓인 국.사진), 순대 등을 맛볼 수 있다. 제주시내 동문시장안의 골목식당(064-757-4890)은 40여년을 이어져오는 꿩메밀국수집으로 유명하다. 제주의 토속별미인 꿩과 메밀로 국수를 말아내는데 담백하고 걸쭉하다.
해비치 힐링프로그램중 오름투어
△잠잘곳=오름과 매혹적인 산간의 풍경은 동쪽에 몰려 있기에 해비치호텔(064-780-8000)을 권한다. 해비치는 다른 특급호텔과는 달리 힐링을 위한 '건강한 휴식' 프로그램이 좋다. 전문트레이너가 필라테스, 타바타 부트캠프 등 다양한 운동프로그램부터 건강 강의와 힐링식단까지 서비스를 하는 숙박 패키지가 대표적. 최소 2박 3일부터 6박 7일까지 진행되는데 반나절쯤을 건강과 운동에, 나머지 시간을 여행과 휴식으로 채울 수 있다. 전문가가 진행하는 동부지역 오름이나 곶자왈 등을 탐방하는 액티비티 프로그램도 좋다. △볼거리=제주에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다. 24일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의 오설록티뮤지엄 인근에 제주항공우주박물관이 문을 연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운영하는 이 박물관은 항공의 역사와 우주의 신비를 다양한 전시물과 최첨단 프로그램을 통해 흥미롭게 보여준다. 1층 전시장은 항공의 역사를 다룬다. 6ㆍ25전쟁 당시의 전투기부터 이제 막 퇴역한 전투기까지 다양한 공군 비행기들이 눈길을 끈다. 특히 전시장 한쪽에 마련된 비행원리 체험 코너는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의 흥미진진한 전시 콘텐츠를 그대로 가져왔다. 천문우주관이 자리한 2층 전시장에서는 별자리와 우주탐사의 역사 등이 다양한 모형과 첨단 영상으로 펼쳐진다. 관람객들을 위한 체험공간인 테마관은 백미다. 360도로 펼쳐지는 5D영상이 상영되는 '폴라리스'와 가상현실의 환경에서 우주비행사가 돼 우주를 탐험할 수 있는 시뮬레이터, 테이블 위의 컴퓨터로 생성한 이미지를 벽면 스크린으로 보내는 양방향 체험프로그램, 지름 15m의 돔영상관 등이 설치됐다.<ⓒ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사진부 여행전문 조용준기자 jun21@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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