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차 대전이 발발할 가능성도 있대." 오랜만에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던 친구 녀석이 뜬금없이 한마디 한다.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핵전쟁이 나면 공멸하는데 무슨 세계대전이냐며 퉁명스러운 대꾸에 친구 녀석은 "2차 세계대전 직전, 나치 독일이 체코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는 것과 지금 러시아가 크림자치공화국을 자국에 편입시키는 것이 유사하다"는 그럴듯한 논리를 얘기했다. 서양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크림반도 문제는 그날 술자리의 좋은 안주감이었다. 3차 대전 운운하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친구의 열변에 다른 친구는 크림반도의 인구 절반 이상이 러시아 사람인데 러시아로 편입되는 게 자연스러운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러시아에 비판적인 친구는 "그럼 그곳에 사는 30%가량의 우크라이나 사람들과 10% 남짓한 크림타타르 사람들은?" 하며 바로 맞받아쳤다. 잠시 움찔한 러시아를 편들던 친구가 슬쩍 화제를 돌렸다. "우크라이나 영토로 수십년 있었다니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많이 사는 건 이해가 되는데 크림타타르인은 뭐냐?" 크림타타르인은 230년 전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편입되기 전까지 크림반도를 지배하던 크림한국(汗國)의 주민이다. 이들의 조상은 800년 전 유라시아 대륙을 휩쓸던 칭기즈칸의 몽골기병대다. 크림한국은 칭기즈칸의 손자 '바투'가 세운 킵차크한국(汗國)의 뒤를 이어 러시아 남부와 우크라이나 일대에 수백년 동안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럼 크림반도의 진짜 주인은 타타르인?" 이 정도까지 가면 답이 안 나온다. 이들의 조상도 그곳에 살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인의 조상들을 내쫓고, 그 땅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크림한국은 수백년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인들을 사냥해 노예로 팔기도 했다. 크림한국이 1783년 러시아에 합병되기 전까지 200년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일대 사람 중 크림한국에 의해 노예로 팔려간 사람만 300만명을 넘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러시아의 보복도 만만찮았다. 크림한국을 병합한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女帝)는 타타르인들을 학살하고, 중앙아시아로 이주시키는 인종청소를 단행했다. 스탈린 시대에는 타타르인들이 2차대전 때 독일군에 부역했다며 재차 대규모 학살을 했다. 정답 없는 얘기들이 오가는 중에 증권사 다니는 친구가 "북한 미사일도 피곤한데 크림까지 이젠 내 발목을 잡는다"며 씁쓸해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소주를 따르면서 '이역만리 떨어진 크림반도 사람들의 생존문제보다 내 주식이 더 소중하다고 느끼는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필수 기자 philsu@<ⓒ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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