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오늘 하루 당신이 투명인간이 된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 재기발랄한 질문에 재치만점인 수만가지 반응이 기대되지만, 여기 꺼림칙하고 섬뜩한 답변 하나가 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오는 '기게스의 반지(Ring of Gyges)' 이야기다. 요약하면 이렇다. '순박한 목동 기게스는 어느날 기이한 반지를 구했다. 손가락에 끼우고 돌리면 다른 사람 눈에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을 지녔다. '보이지 않는 능력'에 취한 기게스는 순박함을 서서히 잃어가더니 급기야 왕비를 겁탈하고 왕을 암살해 스스로 왕에 오르는 탐욕스러운 인간으로 전락했다.' 이를 소재로 삼은 영화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의 해피엔딩이지만, '기게스의 반지'는 지극히 우울한 현실의 거울이다. 철옹성 같은 인간의 도덕성이 사실은 사상누각이라는, 인간 본성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19세기 미국 사상가이자 작가인 랠프 에머슨은 "한밤에 가장 유능한 경찰은 가스등"이라고 말했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순간 인간은 유혹에 굴복하게 마련이다. 타인의 시선과 도덕의 인과관계는 과학적으로 수차례 입증됐다. 미국 토론토 대학 실험에서는 학생들이 시험을 보는 장소의 조명을 어둡게 했더니 부정 행위가 늘어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TV화면에 꽃과 사람의 눈(目)을 각각 띄워놓은 두 개의 방으로 실험 참가자들을 나눠 들여보냈다. 이후 참가자들이 다시 모여 식사를 했는데 '사람의 눈' 방에 들어갔던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식기를 치우는 등 이타적인 행동을 더 많이 했다. 누군가 지켜본다고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이기적 행동이 줄어든 것이다. 같은 맥락이다. 어느 유머 작가는 우리의 양심을 '누가 보면 어떡해!라는 내 마음의 속삭임'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기게스의 반지'가 인터넷에서 부활했다. 내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는 익명성은 자극적이고, 단편적이고, 즉흥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띤다.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정치인이기 때문에, 때론 아무 이유 없이 익명의 손톱들이 누군가를 후벼파고 급기야 파멸로 내몬다. 익명성의 피해자는 오늘은 내가, 내일은 당신이 될 수도 있다. 익명성이 소통의 윤활유라는 점, 나아가 내부고발과 같은 순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과도한 상처와 갈등을 볼 때면 '저 기게스 반지를 어찌해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진다.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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