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 '농담'은 유머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가 얼마나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스무 살의 대학생은 한 아가씨를 좋아하는데, 농담을 즐기는 그와 달리 그녀는 매사에 진지하기만 하다. 이를 답답해하던 그는 농담조의 엽서를 그녀에게 보낸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분위기는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그러나 엽서의 내용이 문제가 돼 주인공은 불온분자로 낙인찍히고 학교에서도 쫓겨난다. 농담으로 던진 몇 마디의 말이 한 젊은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것이다. 옛 동구 공산권 시절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웃음과 풍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전체주의를 비판한다. 농담을 즐길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곧 그 사회의 자유와 여유를 보여준다. 한 사회의 발전은 곧 유머의 진작에 있으며, 웃음과 농담이 풍성한 사회가 진정으로 윤택한 사회다. 그래서 일찍이 동서고금의 성현들이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하느님은 "태초에 웃음이 있었으니, 듣기에 좋았더라"고 했고, 그의 아들은 "농담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설파했으며, 또 공자는 "멀리서 벗이 찾아와 농담을 주고받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실은 우리 민족이야말로 특히 해학을 즐겼다. 단군 할아버지가 제창한 건국의 정신도 "농담으로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것이 아니었던가. 우리가 '농담의 자유'를 빼앗겼던 시절은 그래서 우리 민족에게 큰 수난기였다. 술집에서 농담 한마디 할라치면 주위에 누가 없는지 살피고 해야 했던 때였다. 그러나 우리는 단군 할아버지의 당부를 새기며 노력한 끝에, 미국의 어느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유머의, 유머에 의한, 유머를 위한 나라"로 한 걸음 더 진전할 수 있었다. 새해에는 더욱 많은 농담과 유머로써 우리 사회가 더욱 풍성하고 발전된 나라가 됐으면 한다. 그러나 적이 걱정스러운 일이 나타나고 있다. 신년 초부터 유머를 가장한, 웃음은 나오지만 유쾌하지 않은 웃음만 짓게 하는 유사 유머들이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교과서를 바로잡자고 하니, 전혀 엉뚱한 대응으로 헛웃음만 나게 하는 사람들의 불량 유머다. 어떻게든 국민들을 웃음짓게 해보겠다는 그 노력은 참으로 기특하지만 기껏 쓴웃음만 나오게 하는 그 정도가 '국정 유머'라면, 그건 좀 우습지 않은가.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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