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서기자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카르멘'을 연기한 바다.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어두운 무대, 한줄기 조명은 한 여인의 동선을 따라간다. 붉은 치마 자락을 한 손에 들고 '탁, 탁, 탁' 발동작을 구르며 이내 여인은 홀로 탱고를 추기 시작한다. 입술은 붉고, 눈빛은 이글거리는 그녀의 이름은 '카르멘'. 프랑스 소설가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에 등장했던 그녀는 비제의 오페라를 거쳐 이제는 뮤지컬로 생명을 얻었다. 뮤지컬 '카르멘'은 원작의 큰 줄기를 따라가되 일부 캐릭터와 결말에서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현대판 '카르멘'은 그야말로 마성의 여인이다. 흘깃 주는 눈길만으로도 남자들은 그녀의 매력에 빠져버린다. 강직한 경찰 '호세'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호세는 이미 시장의 딸이자 순수한 매력의 카타리나와 약혼한 사이다.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호세는 '카르멘'을 체포하라는 상부의 명령에 괴로워한다. 카르멘을 철저하게 소유하려 하는 서커스단의 주인 '가르시아'도 가세해 이 둘 사이를 가로막는다.사랑과 증오, 질투와 분노로 얽히고설킨 이 네 남녀의 운명은 끝내 파국으로 치닫는다. 이 치열하면서도 치명적인 '치정(癡情)'이 카르멘의 핵심이다. 하지만 뮤지컬은 이 관계를 끝까지 밀고 가는 뚝심이 부족한 듯 보인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어디 한 곳에 구속될 것 같지 않던 카르멘은 그 특유의 당당함을 잃어버리고 순식간에 비련의 여주인공이 돼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준다. 카르멘과 사랑에 빠지는 호세는 후반으로 갈수록 존재감이 사라지며, 행동의 개연성도 떨어진다. 오히려 가르시아의 카리스마가 극을 좌지우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