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윤락가에서 국내 최초 주상복합 시설로 변신천재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1980년대 초반까지 전자산업 메카 '승승장구'[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 "3만5000원에 줘요. 인터넷에서 다 보고 왔어요." "3만8000원 이하로는 안돼요. 우리도 남는 게 없다니깐요." 겨울추위가 얼굴을 내밀고 있는 12월. 지난 4일 서울시 종로구 장사동의 세운전자상가 2층 전자제품 매장에서는 '깎으려는 이'와 '지키려는 이' 간에 밀고 당기기가 벌어진다. 가습기 몸값을 놓고 벌이는 '3000원'의 실랑이. 복도를 울리는 두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성가실 법도 하지만 상인들은 이 소란이 반갑기만 하다. 가격을 물어오는 사람 목소리 대신 철제 계단을 오르내리는 상인들의 퉁퉁거리는 발걸음이 복도를 메운 지 벌써 수 년.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메카로 이름을 떨치던 세운상가의 2013년은 12월의 날씨만큼이나 쌀쌀하다.
▲ 해마다 찾는 사람들이 조금씩 줄고 있는 세운상가. 손님과 상인이 복도를 걷고 있다.
8개의 건물로 이뤄진 세운상가는 지난 1967년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은 서울 곳곳에서 주거와 상가가 합쳐진 건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아파트도 몇 채 없던 시절, 주상복합 건물은 혁신었다. '리어카'와 '고무신'이 일상이던 때지만 이 곳은 현대식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된 별천지였다. 세운상가가 들어서기 전까지 종로 주변은 윤락업소로 가득했다. 서울의 중심이지만 사창가로 채워진 도심을 바꾸겠다며 칼을 빼든 건 1966년 취임한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이다. 김 시장은 종로와 퇴계로 일대의 모습을 바꾸는 도시정비 사업을 밀어붙였다. 도심의 얼굴을 바꾸는 큰 작업이었기에 건물 설계는 당시 천재 건축가로 불리던 김수근에게 맡겨졌다. 천재의 머릿 속에서 구상된 세운상가는 1~4층은 상가, 5층 이상부터는 아파트로 설계됐다. 신문에 아파트 분양광고가 대대적으로 나가기도 했고 재계 인사와 정치인 등 유명인들이 속속 입주했다.
▲ 세운상가 5층에서 올려다 본 모습. 1~4층엔 상업시설, 5층부터는 주거시설 용도로 만들어졌다.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라'는 뜻의 세운(世運)상가는 이름대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월남전쟁 때 파병됐던 군인들이 가져온 녹음기나 카세트, 카메라 등 각종 전자제품이 이 곳에서 거래됐고 이전에는 없던 물건의 등장으로 부품도 새롭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최신 문물이 이 곳에서 거래되기 시작하면서 서울은 물론 지방에서 올라오는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1976년부터 이곳에 살기 시작한 주민 송달석(74)씨는 그 시절을 떠올리자 흐뭇한 미소가 나타난다. "1970년대에는 세운상가라고 하면 없는 게 없는 곳으로 통했죠. 탱크도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을 정도였다니까요."상인들도 밀려드는 손님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던 때가 엊그제였던 듯 또렷하게 기억했다. 작은 스탠드 하나를 켜놓고 부품을 만들고 있던 세원모타 임재운(55) 사장은 "지금은 상상이 안되겠지만 당시에는 가게에 서로 입주하려고 경쟁이 말도 못했다"며 "월급이 10만원 안팎이던 시절 상가 권리금이 1억원까지 올라가기도 했을 정도"라고 회상했다. 라디오와 TV관련 기술을 가르치는 이른바 RTV 학원에 수강하러 오는 학생도 줄을 이었고 컴퓨터가 대중화되면서 이 곳의 인기는 정점을 찍었다. 1987년 용산전자상가 생기면서 손님 발길 줄어상권 슬럼화되자 서울시, 2006년 세운상가재정비촉진구역 지정경기불황 및 부동산 경기침체로 개발 무산되며 철거 보류그런 세운상가가 부품을 사러 오는 일부 전자공학도와 옛 시절을 추억하는 몇몇 단골 손님만으로 채워지게 된 것은 1987년 용산전자상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강남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70년대 후반부터 주거지로서의 주목이 떨어지고 있었고 새로운 전자상가까지 출현하면서 세운상가는 발길을 돌리는 손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신세가 됐다. 쇠락하는 상권에 상가 주변이 슬럼화되기 시작하면서 세운상가를 만들 때처럼 서울시가 또 한 번의 칼을 빼들었다. 2006년 10월 총 43만8585㎡에 달하는 세운상가 일대가 재정비촉진구역으로 지정됐다. 1km의 녹지축을 조성하고 122m 높이의 새로운 주상복합 건물을 올리는 것이 당초 목표였다. 2008년 12월 세운상가 녹지축 1단계 조성사업이 착공했고 2009년 3월엔 현대상가 건물이 철거됐다. 계획대로라면 나머지 건물들도 지금쯤 자취를 감춰야 했지만 미국발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로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못하면서 사업은 좌초됐다. 철거된 현대상가가 있던 터는 서울시가 대지매입비와 보상비를 포함해 968억원을 들여 매입했고 현재는 농작물 등을 심는 도시농장으로 운영하고 있다.철거계획 발표와 함께 세운상가는 사람들의 뇌리에서도 철거됐다. 세운상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영업이 정지돼 더 이상 이 도시에 남아 있지 않은 걸로 오인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 살아 있다. 가끔 세운상가를 방문하는 최규남(56)씨는 "인터넷이나 다른 곳과 가격 차이는 많이 나지 않지만 젊은 사람들은 이 곳을 잘 몰라 점점 잊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 환하게 불을 밝힌 조명가게들이 오는 손님을 반긴다. 상가를 알리려는 필사의 노력일까. '세운상가'라고 적힌 큼지막한 간판 3개가 건물을 감싸고 있다.
개발도, 철거도 아닌 상태에 있는 세운상가를 놓고 서울시와 상인들의 온도차도 크다. 시는 당초의 철거 계획을 백지화하고 건물과 상권의 가치를 그대로 살리는 리모델링 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초 8개 구역으로 나눠진 구역도 174개로 세분화 했다. 시는 이와 관련해 이달 20일 공청회를 열 계획이지만 상인들은 서울시가 몇 년째 방치된 채 흘러온 것에 대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명재 서울시 역사도심관리과 도심활성화팀장은 "세운상가 개발은 원래 시가 전체적인 계획 수립을 하고 개발이나 구체적인 진행은 모두 민간에서 하는 걸로 진행된 것이기 때문에 시가 보상의 주체가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성원전자 상인 이충희 (55)씨는 "도시계획에 따라 이 곳을 재정비한다는 계획을 세울 때 많은 상인들과 주민들이 반대했지만 결국 강행했다"며 "이 곳 상인들을 개발 차익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여기는 시선들이 많은데 대다수가 하루하루 장사로 충실히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일 뿐이다"고 말했다. 이제는 찾는 사람보다 추억하는 사람이 많은 세운상가. 그러나 이 곳의 시계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종로의 역사를 지켜온 중년의 세운상가는 오늘도 종로 앞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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