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도서관 최다 기증자 한상진·심영희 교수 부부
[아시아경제 이혜영 기자]1만919권. 지난달 개관 1주년을 맞은 서울도서관에 가장 많은 도서를 기증한 개인의 기록이다. 소규모 도서관의 장서량에 가까운 '지식의 보고'를 아낌없이 내놓은 사람은 한상진(68)·심영희(66) 교수 부부다. 중산층이 사회의 변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중민이론'을 주창하며 국내 대표 석학으로 꼽혀 온 한 교수는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2010년 정년퇴임했다. 이후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을 만들어 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고, 부인 심 교수는 한양대 연구석좌 교수로 활동 중이다. 서울도서관 1호 도서 기증자이자 최다 기증자가 된 부부는 현재 중국 베이징대학의 초빙교수로 함께 강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 부부에게 책은 분신이자 자부심이었지만, 정년을 지나면서 책을 꼭 지켜야 한다는 집념을 버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부부는 그토록 아끼던 책을 기증하면서 '욕심'도 함께 버렸다. 이사를 하기 어려울만큼 많은 책을 갖고 있던 부부는 집착을 버린 대신 편안한 마음을 얻었다.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만들어 낸 결정 덕분에 부부의 서재에서 퍼지던 책 향기는 서울도서관으로 그대로 옮겨와 많은 시민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전문서적을 포함해 가진 책 대부분을 기증한 덕분에 앞으로 필요한 책은 도서관을 찾아 빌려봐야 한다는 '행복한 번거로움'이 부부에게 생겼다. 지난 1년간 기증한 일을 떠올리며 한 교수는 20대 청춘도 함께 떠올렸다. 그에게 '청춘'은 곧 '책'이었다. 그는 "책이 귀했던 196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시위와 휴교령으로 수업이 없을 때면 청계천의 헌책방을 도는 것이 취미였죠. 좋은 책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도 했고, 빈곤과 압제에 시달리던 젊은 세대의 지적 욕구는 매우 강했습니다"라며 시절을 회상했다. 한 번 손에 쥔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자신만의 세계관과 사상을 만들었다. 한 교수는 "여러 번 읽으면서 행간의 의미까지 느끼려 노력했다"며 "독일어 책과 영어 책은 '읽는 맛'이 다른데 그런 과정을 거치며 큰 기쁨과 보람을 얻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비롯해 첨단을 달리는 IT기기에 책이 점차 밀려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 교수는 사람들이 합리적인 언어보다는 감정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 우려된다며 "감정을 무시해서도 안되지만 손쉬운 편가르기로 흐르면 사회는 힘든 홍역을 치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다닐 것인가, 소나무처럼 자신의 뿌리를 견고하게 내릴 것인가' 이 둘을 다 할 수 있으면 좋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지식은 깊은 독서와 체험을 통해 만들어진다"며 독서를 통한 사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교수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교육환경이 열악한 곳에 '명사의 도서관' 같은 것을 세워 배움의 의지는 강하지만 여건이 따라주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교육과 문화활동을 펼쳐가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책에서 얻은 배움,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조금이라도 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일에 동참하려하는 지인이나 제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곧 실현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혜영 기자 itsm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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