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쿠!”“아이쿠!” 느닷없는 총소리에 앉아있던 노인네들은 숟가락을 떨어뜨리거나 머리를 상 아래로 쳐박으며 비명을 질러댔다. 벤드 소리는 물론 시끄럽게 떠들던 소리도 갑자기 뚝 끊어졌다. 일순간 쥐 죽은 듯한 무거운 정적이 천막 주위를 감돌았다. 총소리의 여운은 한참동안 산을 감돌아 계곡 위로 길게 퍼져나갔다. 일순간의 죽음 같은 정적이 흐른 후, 다시 사람들의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아니, 벌건 대낮에 뭔 일이여?”“벼락이라도 떨어졌단 말인감?” 그때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눈에 저만큼 골짜기 쪽으로 향해 있는 길 입구 한복판에 한 노인이 양 손에 비스듬히 엽총을 들고 서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이층집 영감이었다. 이층집 영감은 서부 영화에 나오는 존 웨인처럼 엽총을 양손에 비스듬히 들고 지금 한참 열이 올라가고 있던 경로잔치 마당을 멀찌감치 노려보고 있었다. 집에서 입고 있던 그대로 쫒아 나왔는지 런닝 바람에 헐렁한 푸른 체크 무늬 반바지 차림이었다. 입은 꼭 다물고 있었지만 한쪽으로 심하게 이지러져 있었고, 가늘게 찢어진 눈은 멀리서 보아도 분노로 심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쯤 벗겨진 흰머리카락은 제멋대로 헝클어져 갑자기 낮도깨비라도 나타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아니, 저 영감이....?”“오메, 저거 총 아닌가베?”“맞어. 누렁이 쏘아죽인 바로 그 엽총인가 벼.”“미쳤어!” 사람들은 저마다 나오는대로 떠들어대느라 바빴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사람, 그 자리에 납작 엎드리는 사람, 가지가지였다. 느티나무 꼭대기 하늘을 향해 공포탄을 한방 날린 이층집 영감은 한동안 못에 박힌 듯 박제라도 된 것처럼 그렇게 서있었다. “뭐냐, 저 영감탱이는.....!”“이층집 또라이 영감이잖어!” 그러자 비로소 정신을 차린 주최 측 양복쟁이 사내들이 상황을 파악하고는 앞으로 나섰다. 맨 먼저 송사장이란 자가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이봐! 최상무, 뭣하고 있나? 남의 잔치판에 재를 뿌리고나서도 유분수지. 당장 경찰서에 신고해!” 하지만 최기룡은 전화를 거는 대신 앞으로 나와 영감 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핸드폰은 대신 화살코 조부장이란 자가 열심히 두드려대고 있었다.앞으로 나선 최기룡은 마치 서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층집 영감을 향해 대담한 걸음으로 가까이 가고 있었다. 긴장된 순간이었다. 영감의 눈썹이 꿈틀하고 움직였다. 눈빛이 반짝하였다. 최기룡의 푹 꺼진 눈과 광대뼈도 따라서 한번 꿈틀하는 것 같았다. “나쁜 놈.” 먼저 영감의 입에서 나지막했지만 누구나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씹어뱉듯한 말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금세라도 총구를 최기룡의 가슴을 향해 겨누고 방아쇠라도 당길 것 같았는데, 영감은 여전히 그가 가까이 갈 동안 그대로 굳은 듯이 서있을 뿐이었다. 하늘을 향해 공포탄을 쏘는 것과 총구로 가슴을 향해 겨누는 것은 결과가 판이하게 달랐다. 영감의 얼굴은 분노와 좌절감으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둘 사이가 마침내 코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글. 김영현 / 그림. 박건웅김영현 기자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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