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국회의원은 불체포특권을 갖는다. 불체포특권은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체포되지 않는 특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국회의원이 현행범인이 아니라면 국회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 특권(헌법 44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뿐이다. 즉, 국회가 열렸을 때에는 국회의 동의 없이는 국회의원을 체포할 수 없다는 것이다.불체포특권은 행정부의 부당한 탄압을 막고 의회의 자주적인 활동과 자유로운 직무수행을 위해 도입한 제도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의회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한 제도라고 볼 수 있다.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회기 중에 죄가 의심스러운 의원에 대해 수사와 재판이 이뤄지면 판사는 정부에 체포동의요구서를 보내고 정부는 국회에 체포동의를 요청하게 된다. 국회의장은 정부의 요청을 받은 직후 첫 번째 본회의에서 이를 보고해야 한다. 보고로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체포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지면 체포동의안은 가부간에 결론이 난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사례처럼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해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하면 체포동의안은 통과되고 판사는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 있다. 부결이 될 경우에는 판사는 구속영장청구를 기각한다.우리나라에서는 제헌국회 이래로 체포동의안이 53건이 제출됐지만, 이중 12건이 가결됐다. 20%를 약간 웃도는 수준인 셈이다.국회의원 체포 동의안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하나의 사례를 통해 체포동의안의 이모저모를 분석해보려 한다.김영주 새누리당 의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과 2심에서 징역 10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김 의원은 지난해 4·11 총선을 앞두고 심상억 전 선진통일당(새누리당과 합당) 정책연구원장에 비례대표 공천을 대가로 50억원을 빌려주기로 약속한 혐의로 이 같은 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심 전 원장은 김 의원에게 공천을 약속하고 돈을 빌려 달라고 요구한 혐의로 1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1심 재판부는 심 전 원장과 김 의원 간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체포동의요구서를 제출했으나 여야가 정부조직개편안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의사일정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무산됐다.7월25일 서울 고법 형사2부에서도 김 의원에 대해 원심과 같이 당선 무효형인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실형 선고에 따라 구속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임시국회가 진행 중이라는 점을 들어 김 의원을 법정구속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살펴야 할 점은 법원의 선고는 7월4일에 예정됐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6월 임시국회가 폐회된 이후 국회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김 의원은 선고를 받은 즉시 법정구속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김 의원의 변호진은 3일 재판 재개를 신청하면서 재판이 연기됐다. 그 사이에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4일 민생입법 처리를 위한 임시국회를 열것을 요구하면서 7월8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임시국회를 소집했다. 재판을 미룬 김 의원은 야당이 임시국회를 소집한 덕에 7월25일 재판에서 법정 구속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7월29일 정부는 법원으로부터 건네받은 체포동의안을 국회에 전달했다. 하지만 이 체포동의안 역시 보고만 거치고 본회의 표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예정에 없던 하루짜리 본회의가 8월12일 열렸기 때문이다.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넘어온 뒤 열린 첫 번째 본회의가 바로 하루짜리 국회였기 때문이다. 이날 본회의는 8월15일로 종료되는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활동 기간을 연장하는 것만을 의결하는 하루짜리 본회의였다. 김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이날 보고 외에도 별도로 본회의 의사일정이 합의되어야 하지만, 결국 본회의는 열리지 않았다.김 의원의 체포동의안 보고와 관련해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당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체포를 막기 위한 방탄국회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 오늘 임시회는 결코 방탄국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민주당에서는 김 의원에 대한 체포 동의안을 위해 본회의 개최를 여당과 협의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언주 민주당 대변인인 서면 브리핑을 통해 “(김 의원에 대한 형 집행은) 내일(13일)부터 정기국회 전까지는 회기 중이 아니므로 국회가 아닌 법무부가 판단해 체포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고 밝혔다. 국회가 열리지 않았을 때 김 의원에 대한 체포가 이뤄지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 일부 언론에서는 김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언론은 "표결을 통해 동료 의원의 구속 집행여부를 결정하는 '악역'을 피하는 '묘책'을 찾아냈다"고 전했다. 그렇게 체포동의안 보고 후 국회법이 정한 72시간이 지나버렸다. 하지만 이같은 정치권과 언론의 판단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런 판단(회기 기간이 아닐 때 체포하면 된다)이 맞았다면 2월에 제출된 체포동의안 이후에라도 김 의원은 국회가 열리지 않는 시점에 체포됐어야 했기 때문이다.언론들은 체포동의안과 관련해 두 가지 사실을 간과했다. 첫째, 상당수 언론들은 체포동의안 국회보고 72시간이 경과된 후 김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자동 폐기됐다고 보도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사실이다. 김 의원 체포동의안은 폐기된 게 아니라 계류상태로 국회에 여전히 부의(附議))가능한 안건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체포동의안을 보낸 사법부의 입장에서는 김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아직 국회에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김 의원에 대한 체포에 나서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회법 26조 2항은 "체포동의를 요청받은 후 처음 개의하는 본회의에 이를 보고하고, 본회의에 보고된 때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한다"로 되어 있다. 하지만 72시간이 경과된 이후에 어떻게 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계류상태인 체포동의안이 재상정된 전례가 없다"며 "재상정이 가능한지에 대해 말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술적인 의미에서만 본다면 김 의원 체포동의안은 여전히 국회표결이 가능한 부의가능안건으로 분류되어있다. 이 문제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과거 문제제기를 한 부분이기도 하다. 2008년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와 김재윤 민주당 의원의 체포동의안 표결과 관련해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홍 지사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체포동의안은 탄핵안이나 장관 해임건의와는 달리 72시간이 지나면 폐기된다는 조항이 없다"며 "국회에 계류되고, 언제라도 재상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계류상태에 있는 체포동의안이 표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따져볼 수 있는 사안이라는 해석이다. 결과적으로 하루짜리 본회의에서 보고만 되고 표결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김 의원의 체포동의안은 애매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것도, 부결된 것도 아닌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언론이 놓쳤던 점은 김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보고되는 시점에는 이미 김 의원 재판은 대법원에 상고됐다는 점이다. 김 의원 재판은 이미 체포동의안 보고가 있었던 8월 12일 5일전인 8월7일 대법원에 넘어왔다. 대법원으로서는 확정판결만 내리면 사안이 종결되기 때문에 김 의원의 체포에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없다. 대법원 판결을 통해 김 의원이 형을 살아야 한다면 3개월 내에 결정될 것이고, 형을 살지 않아도 된다면 굳이 체포되어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3개월 이내에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올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는 공직선거법 270조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선거범과 그 공범에 관한 재판은 다른 재판에 우선하여 신속히 하여야 하며, 그 판결의 선고는 제1심에서는 공소가 제기된 날부터 6월 이내에, 제2심 및 제3심에서는 전심의 판결의 선고가 있은 날부터 각각 3월 이내에 반드시 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수개월내에 확정판결을 하는 대법원으로서는 굳이 김 의원 체포에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기자는 김 의원 체포동의안의 재상정 가능여부에 대해 취재를 하던 중에 새누리당 핵심관계자로부터 "김 의원 대법원에 넘어간 사건으로 체포동의안을 다루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몇달 뒤면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날 사안이기 때문에 체포동의안 처리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법원의 시각과 전혀 다르다. 고등법원은 김 의원이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체포동의안 국회 본회의 보고 시점이 대법원 상고 뒤인 9월 정기국회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체포동의요구서를 제출했다. 즉, 교등법원은 김 의원의 체포동의안은 대법원 상고와 무관하게 국회의 표결을 통해 반드시 결정될 사안이라고 봤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다른 자리에서 (국회가) "법원 판단의 적법성과 정당성을 따지겠다는 것은 삼권분립 원칙을 경시하는 정치우월주의적인 발상"이라며 법원의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 점이다. 입법부와 사법부의 관계에 대한 태도가 그때마다 달라진 것이다.체포동의안은 본회의 보고 후 72시간이 경과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명문 규정이 없다 보니 실질적인 구속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제도적 미비점과 의원들의 제 식구 감싸기로 인해 체포동의안은 실효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한 대목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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