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왼쪽)과 문태영[사진=정재훈 기자]
1980년대에는 2시간 20분, 1990년대에는 2시간 10분의 벽을 깨는 게 한국 마라톤의 소망이었다. 세계 마라톤이 1950년대에 2시간 20분대, 1960년대에 2시간 10분대의 벽을 허물었으니 세계 수준에 30년가량 뒤진 한국 마라톤은 말 그대로 거북이걸음이었다. 농구는 기록경기는 아니지만 오랜 기간 마라톤과 비슷한 소망이 있었다. 2m대 센터의 보유였다.고려대는 지난 22일 끝난 프로-아마추어 농구 최강전에서 프로팀과 상무를 차례로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오랜만에 조득준~김영기~이충희~전희철 등으로 이어진 ‘안암골 호랑이’ 농구의 진수를 선보였다. 단체 종목의 최고 덕목은 팀워크다. 올해 고려대는 김지후, 이승현 등의 우수 선수들이 강한 전력을 구축했다. 그런 가운데 1학년 센터 이종현은 외국인 선수가 빠진 프로팀의 골밑을 자유롭게 휘젓고 다녔다.206cm의 이종현은 KT와 치른 8강에서 16득점 11리바운드, 결승 진출 최대 고비였던 지난 시즌 프로농구 챔피언 울산과 준결승에서 27점 21리바운드, 상무와의 결승에서 21점 12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주요 경기에서 연속으로 ‘더블 더블’을 뽐냈다. 이종현은 키만 큰 센터가 아니었다. 기동력과 슈팅 능력 등을 두루 갖췄다. 한국은 지난 11일 마닐라에서 끝난 아시아남자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 1998년 그리스 대회 이후 16년 만에 농구월드컵(옛 세계선수권대회)에 진출하게 됐다. 이종현은 이를 가능하게 한 대학생 멤버 5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몇몇 매체들은 이미 그를 서장훈(207cm)의 뒤를 이을 차세대 국가대표 센터로 내다보고 있다.서장훈도 그랬지만 이종현도 세계무대에선 ‘꼬마 센터’에 가깝다. 물론 한국인의 체격 조건상 이 정도 키의 센터를 발굴하는 건 무척 힘든 일이다. 한국 남자 농구는 2m대는커녕 190cm대 센터를 보유하는 게 숙원인 시절이 있었다. 대표팀은 1969년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와 1970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에서 각각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주전 센터는 김영일로 신장은 188cm였다. 1960년대 초반 대표팀의 주전 센터 백남정도 키는 189cm에 불과했다.당시 농구에서 센터의 기능은 지금과 조금 달랐다. 슈터에게 기회를 잘 만들어 주는 선수를 우수한 센터로 평했다. 높이의 위력을 절감하기는 했다. 그렇게 192cm의 박한이 등장했고, 한국 농구는 비로소 190cm대의 센터를 보유하게 됐다.
이종현(오른쪽)과 박재현[사진=정재훈 기자]
박한 이후에도 180cm대의 센터들은 계속 나왔다. 센터의 장신화가 그만큼 어려웠던 셈.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중국을 꺾고 아시안게임 사상 두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 주전 센터는 신선우의 몫이었다. 당시 그의 키는 189cm였다. 2m대 선수가 즐비했던 중국에 비하면 ‘꼬마 센터’였다. 한국으로선 대회에 238cm의 키를 자랑하는 ‘공포의 만리장성’ 무티에추가 고령으로 불참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당시 센터의 장신화를 이룬 건 중국만이 아니었다. 그 무렵 일본에는 234cm의 장신 센터 오카야마 야스다카가 있었다. 한국은 1983년 점보시리즈에서 남자 농구 선수로는 처음으로 실전에서 덩크슛을 성공시킨 조동우가 195cm 이상의 센터 시대를 열었다. 당시 그는 공을 나눠 주는 센터가 아닌 ‘공격형 센터’라는 플레이 스타일을 국내 농구에 처음 들여놓았다. 이에 앞서 하승진(221cm)의 아버지인 하동기(204cm)는 한국 센터로는 처음으로 2m 이상의 키를 자랑했다. 1978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대표로 뽑히는 등 기대를 모았으나 농구를 늦게 시작한 탓에 성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무릎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짧게 하고 코트를 떠났다.한국 농구는 이후 본격적인 2m대 센터 시대를 열게 된다. 주인공은 1980년대 205cm의 한기범과 1990년대 서장훈. 특히 한기범은 197cm의 김유택과 더블 포스트를 이뤄 중앙대와 기아자동차를 1980년대 국내 성인농구 정상으로 이끌었다. 이어 나타난 서장훈은 장신이면서도 기동력을 발휘해 아시아권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발휘했다. 그의 선전으로 한국은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229cm의 ‘걸어 다니는 만리장성’ 야오밍이 버틴 중국을 꺾고 아시안게임 사상 세 번째 우승을 거뒀다. 이종현은 세계무대에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낼 수 있을까. 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농구 월드컵은 내년 9월 스페인에서 펼쳐진다. 이 대회에 이어 개최되는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은 이종현의 높이를 앞세워 신흥 강호 이란에 재도전한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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