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내가 형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거 알지? 내가 형 책을 조금밖에 읽지 않았고 형 작품이 내 취향은 아니지만, 스스로 택한 업을 대하는 형의 자세에 누구보다 감동한 사람이 나야. 형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말했잖아. 매일 쉬지 않고 의식을 집중해 써 나가는 작업을 계속함으로써 '근력'을 키워야 한다고. 발밑을 삽으로 파 내려가다가 비밀의 수맥과 마주치게 된다면 그 행운은 그런 훈련으로 확실한 근력을 갖춘 덕분이라고. 형의 그런 성실함을 본받으려고 했는데…. 하루키 형, 그런데 그 책 서문에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본 문구를 인용하고 번역해 소개했잖아. 사람들이 마라톤을 할 때 자신에게 되뇌는 주문 같은 것을 모아 소개한 기획기사였고, 형 마음에 꽂힌 말은 이거였지.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 그럴듯하긴 한데, 이게 무슨 뜻이지? 아픔과 고통은 동의어 아닌가? 형은 무슨 뜻인지 알고 쓴 거야? 구글에서 찾아보니 불교의 가르침이라고 하더군. 출처는 나오지 않는 걸로 봐서 '무명씨(無名氏)'가 만든 말인가봐. 형한테는 미치지 못하지만 내가 집요하잖아. 실마리를 찾아 헤매다 비슷한 문구를 마주쳤어. 'Pain is inevitable, but suffering is not.' 헤네폴라 구나라타나 스님이 'Mindfulness in Plain English(1991)'에 썼더군. 구나라타나 스님의 설명을 들으면 이 화두가 풀리겠다고 기대했지. 그런데 그 설명이, 음, 상당히 억지스럽더라. 구나라타나 스님은 육체의 고통을 명상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래서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를 얻게 된다고 하는데, 형은 이 말이 믿겨져? 명상으로 진통제도 마취제도 필요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형, 이 말에 이제 새로운 의미를 주면 어떨까.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인고(忍苦)는 선택할 수 있다'로. 마침 'suffer'에는 '참아 내다' '겪다'는 뜻도 있잖아.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그 고통을 어떻게 겪는지는 사람 나름이다'도 괜찮겠어. 어려운 일에 뛰어들어 예상했던 고통을 기꺼이 견뎌 내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구. 그 사람의 고통은 같은 상황에 피동적으로 끌려간 사람이 받는 고통과는 종류가 다르겠지. 형, 언제 우리 처음 만나게 된다면 이 얘기를 나눠 보자. 함께 뛰면서 얘기해도 좋겠다. 백우진 선임기자 cobalt100@<ⓒ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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