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2007년 이탈리아에서 '라 카스타(La Casta)'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카스타란 인도의 카스트(Caste) 제도를 뜻한다. 저자들이 이탈리아의 특권층이라고 꼬집었던 계층은 누구였을까. 엄청난 예산을 물 쓰듯 하면서 어느 누구도 손 댈 수 없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정치인들이었다.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이탈리아 정치인들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최근 '라 카스타'를 언급하며 이탈리아의 최대 골치거리가 바로 정치인이라고 지적했다.슈피겔은 이데올로기에 집착한 나머지 타협할 줄 모르는 이탈리아의 정치인들을 비꼬면서 좌·우파가 연정을 만들어낸 것도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어 이탈리아가 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았지만 기회를 제대로 활용해 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며 이탈리아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지적했다. 슈피겔이 이탈리아가 기회를 잡았다고 언급한 것은 유럽연합(EU)이 이탈리아에 재정 운용에 대한 재량권을 준 것이다. 유럽연합(EU)은 유럽 전역에서 긴축정책과 관련해 반발이 거세지자 지난 5월 프랑스·스페인 등 6개국에 대해 재정적자 3% 목표 달성 시한을 1~2년씩 연장해줬다. 이탈리아처럼 재정적자 비율을 3% 이내로 낮춘 국가는 재정정책 감시 대상에서 아예 제외해줬다.이는 이탈리아가 마음껏 재정 정책을 취해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라고 슈피겔은 설명했다. 엔리코 레타 이탈리아 총리는 트위터에서 "우리가 해냈다"는 말로 재정운용 자율권 확보를 반겼을 정도다.그러나 이후 이탈리아 정부는 제대로 된 경제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우파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 대한 재산세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폐지할 경우 정부는 40억유로(약 5조9118억원)의 세수를 포기해야 한다.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부가가치세 인상에도 반대하고 있다. 그의 요구대로라면 이탈리아 정부는 20억유로를 추가로 포기해야 한다. 부가가치세 인상은 당초 7월1일 시행 예정이었으나 3개월 연기됐다. 반면 레타 총리와 좌파는 청년 일자리 창출에 15억유로 투자를 원하고 있다. 재정지출을 원하는 좌파와 세금 부담 경감을 원하는 우파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레타 총리는 개혁안을 공개했지만 정치권이 이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그나치오 비스코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조차 "움직이는 게 하나도 없다"며 "이탈리아는 멈춰 있는 상태"라고 불만을 토했다.국제 신용평가업체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이탈리아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며 지난달 초순 이탈리아의 신용등급을 두 단계 끌어내렸다.이탈리아 경제는 이미 최악을 향하고 있다. 2007년 이래 국내총생산(GDP)은 7% 줄었다. 이탈리아 정부는 올해도 GDP가 1.3%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탈리아 중앙은행의 경제 전망은 더욱 비관적이어서 감소율이 1.9%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탈리아산업총연합은 2007년 이후 자국의 제조업 일자리가 50만개 이상 사라지고 산업 생산력의 15%가 감소했다고 주장한다. 또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의 생산력은 40% 이상 줄었고 일부 산업군은 더 심각한 생산력 감소를 겪고 있다며 이탈리아는 전례없는 제조업 쇠퇴를 겪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듀크 대학의 지아니 토니올로 교수는 "이탈리아 경제가 사상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다"며 "상황이 1929~1934년의 대공황 당시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진단했다.박병희 기자 nut@<ⓒ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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