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미국 여죄수들 다룬 관능의 뮤지컬 '시카고'

희곡작가 모린 달라스 왓킨스의 연극이 시초..무성영화 거쳐 뮤지컬로 탄생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1920년대 미국은 경제·문화의 황금기인 동시에 도덕적으로는 퇴락기였다. 전쟁을 거치면서 영국을 밀어내고 세계경제의 중심이 된 미국. 주가는 폭등하고, 빌딩은 높아져갔으며, 자유분방한 재즈가 번성하고, 집집마다 라디오가 보급됐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쾌락을 추구했다. 많은 예술인들이 이 격변기의 미국을 가만둘 리 없다. 이미 영화로도 개봉된 스콧 피츠제럴드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도 이 호화로운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 않았던가. 뮤지컬 '시카고'의 배경도 1920년 미국이다. 살인과 섹스, 간통과 배신이 난무하지만 돈만 있으면 이것들마저 얼마든지 '포장'할 수 있는 시대다. 주인공들은 쿡카운티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여죄수들이다. 이들은 치정, 불륜, 폭행 등 갖가지 이유로 온갖 살인을 저지르고 언론의 관심을 받는다. 이중에서도 최고 스타는 남편과 여동생이 한 침대에 있는 것을 보고 이들을 죽인 미모의 전직 배우 '벨마 켈리'다. 그러나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정부를 살해한 죄로 교도소에 들어온 신참 '록시 하트'가 곧 새로운 스타로 등장하면서 '벨마 켈리'의 위치도 위태로워진다. 갖가지 술책과 묘수로 '록시 하트'는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고 '벨마 켈리'도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해 온갖 방안을 모색한다.뮤지컬 '시카고'는 살인을 저지른 죄수들이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어이없는 상황을 화려한 쇼로 묘사한다. 언론이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연일 대서특필하며 대중의 관음증을 거드는 모습도 풍자적으로 묘사돼있다. 여기다 더 자극적인 것을 좇아 순식간에 스타를 갈아치워 버리는 대중과 언론의 변덕스런 속성도 흥미롭게 표현돼있다. 작품은 시가, 권총, 갱, 재즈 등 당시 시카고를 대표하는 상징물들을 곳곳에 심어놓아 1920년대 미국의 어두운 치부를 발칙하게 드러낸다.
'시카고'의 시작은 당초 뮤지컬이 아니라 연극이었다. 당시 '시카고 트리뷴'지의 기자이며 희곡작가였던 모린 달라스 왓킨스이 1926년 쿡 카운티의 공판에서 영감을 받아 쓴 연극이 '시카고'의 시초다. 이어 1927년과 무성영화 '시카고'와 1942년 '록시 하트'로 영화화됐지만 뮤지컬로 제작된 것은 이보다 한참 뒤인 1975년 경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계의 신화적 존재인 팝 파시가 농염한 재즈 선율에 관능미 넘치는 안무, 매력적인 멜로디 등을 더해 뮤지컬 '시카고'를 탄생시켰다. 이후 여러 차례의 재정비를 거쳐 현재의 '시카고'의 모습을 갖추게 됐는데, 브로드웨이 역사상 '오페라의 유령', '캣츠'에 이어 세번째로 롱런한 공연으로 기록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0년 첫 선을 보였다. 초연부터 함께 한 인순이, 최청원, 성시윤 등 베테랑 배우들이 올해도 화려한 무대를 선사해줄 예정이다. 특히 최정원은 '벨마 켈리'에서부터 '록시 하트'까지 지난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매 시즌 출연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0년 '금발이 너무해' 이후로 3년만에 뮤지컬에 복귀한 배우 이하늬와 2007년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여주인공을 맡았던 오진영도 이번에 새롭게 '록시 하트'로 합류한다. (8월31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 조민서 기자 summe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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