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전, 최악의 골대 불운? 최악의 부진!

레바논전에서 수비수와 몸싸움 중인 이동국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축구계에는 '골대를 맞추면 진다'는 속설이 있다. 그것도 세 번이나 골포스트를 때렸다면? 지독한 불운을 먼저 떠올릴 법하다. 이번엔 다르다. 승리를 놓친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었다. 그만큼 드러난 부진이 너무 컸다. 5일 새벽(한국시간) 레바논 베이루트 카밀 샤문 스포츠시티스타디움에 열린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6차전이다. 한국은 경기 내내 일방적 공세를 펼치고도 레바논과 1-1 무승부에 그쳤다. 무수한 슈팅이 골문을 빗겨나간 가운데 골대도 세 번을 맞췄다. 후반 추가 시간 김치우의 극적인 프리킥 동점골로 패배를 모면한 게 다행일 정도였다. 상대는 '오합지졸'이었다. 조 최하위이기 때문이 아니다. 레바논은 올해 초 승부조작으로 주축 선수 6명이 퇴출됐다. '에이스' 로다 안타르는 돌연 은퇴를 선언했고, 수비수 알리 함만은 캐나다인 아내를 따라 여행을 떠났다. 미국 청소년 대표 출신의 신예 공격수 수니 사드는 행정 실수로 국제축구연맹(FIFA)의 승인을 받지 못해 한국전에서 빠졌다. 감독마저 두 손을 들었다. '사실상 포기'를 선언하며 2015 아시안컵을 노린 젊은 팀으로 리빌딩을 했다. 안 그래도 내전을 겪는 상황에 홈팬들의 관심은 뚝 떨어졌다. 5만여 명이 찾던 경기장은 절반 이상이 텅텅 비었다. 대승을 거둬도 시원찮은 경기. 결과는 졸전이었다. 최강희호 출범 이래 '최악'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수장이 늘 강조하던 공수밸런스부터 무너졌다. 김남일-한국영 더블볼란테를 선발로 내세운 점이 패착이었다. 안정적 경기 운영을 노린 선택이었으나, 상대가 주저앉는 상황에선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는 잉여나 다름없었다. 공격형 미드필더 김보경과의 연계 플레이도 부족했다. 이 때문에 전방을 향한 볼배급은 물론 경기 템포 조절 능력도 떨어졌다. 허리를 단단케 하려는 의도는 오히려 부실의 원인이 됐다. 중원이 뻥 뚫리면서 공수 간격은 점점 더 벌여졌다. 자연스레 패스 흐름이 원활하지 못했다. 전진패스보다 횡패스나 백패스가 많았고, 이마저도 성공률이 떨어졌다. 공격 흐름이 뚝뚝 끊기며 상대 역습에 흔들리는 장면이 빈번했다. 전방에선 공격수 네 명만으로 8~9명의 수비를 공략해야 하는 상황이 잦아졌다. 이동국과 이근호는 상대 집중견제에 발이 묶였다. 이청용이 측면과 중앙을 오가며 홀로 고군분투할 뿐이었다. 고질병까지 도졌다. 경기 시작 12분 만에 세트피스에서 실점한 것.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왼쪽 코너에서 키커가 짧게 내준 공이 한 명을 거쳐 반대편으로 넘어온 것을 하산 마툭이 오른발로 마무리했다. 한국은 8명의 선수가 페널티 박스에 있으면서도 전혀 견제를 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다 골을 헌납했다. 평범한 코너킥을 예상하다 기습적인 전술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레바논전에서 홀로 고군분투했던 이청용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일찌감치 선제골을 내주자 마음이 급해졌다. 이는 골 결정력에도 영향을 미쳤다. 설상가상 상대 수문장의 '선방쇼'까지 더해지며 좀처럼 골문을 열지 못했다. 골대를 세 번이나 맞추는 불운을 탓하기보다는, 좀 더 정교한 공격전술로 문전에서의 침착한 마무리를 하지 못한 점을 지적받을 만 했다. 한국은 이날 슈팅 18회, 유효슈팅 10회를 기록했다. 이동국은 무려 8개의 슈팅을 때리고도 골문을 열지 못했다. 전반 9분과 44분 노마크 기회에선 크로스바 위로 공을 차버렸다. 교체 자원들마저 부진했다. 손흥민은 후반 30분 무인지경에서 헛발질로 기회를 날렸고, 김신욱은 순간 멈칫하며 절호의 득점 기회를 놓치곤 했다. 후반 추가 시간 김치우의 프리킥으로 간신히 한 골을 만회한 게 전부였다. 경기 후에도 굴욕은 이어졌다. 테오 부커 레바논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예상치 못한 부진을 보였다고 꼬집었다. 그는 "뻔히 보이는 공간에도 패스를 넣지 않고, 볼을 뺏긴 뒤에는 압박도 가하지 않고 지켜만 봤다"라며 "너무 볼을 자주 흘리는 실수도 저질렀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리빌딩을 시작한 팀으로 한국 같은 강호와 비겨 기분이 좋다"라며 "아시안컵을 대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뻐했다. 졸지에 한국이 망가진 팀의 연습 상대가 돼 버린 셈이었다. 최강희 감독은 "지난 일주일 동안 이런 결과가 생기지 않도록 하려고 열심히 준비했는데 안타깝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라며 "당연히 감독이 잘못한 것"이라고 자인했다. 선수들은 개별 인터뷰도 사양한 채 곧장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선수단은 귀국 후 파주NFC로 이동해 남은 최종예선 일정에 대비한다.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우즈베키스탄과, 18일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이란과 맞붙는다. 한국은 이날 승점 1점을 추가하며 3승2무1패(승점 11)로 우즈베키스탄을 골득실(한국 +6, 우즈벡 +2)에서 제치고 조 1위로 올라섰다.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 당장 3위 이란(승점 10)과의 격차도 크지 않다. 아직 본선 진출을 장담하긴 어렵다. 전성호 기자 spree8@<ⓒ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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