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종민 기자]지난해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그리스 정치인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급진좌파연합) 대표에 이어 이탈리아의 한 정치인이 요즘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정치 풍자 코미디언 출신으로 지난달 총선에서 이탈리아 제3당으로 부상한 '오성운동'을 이끄는 베페 그릴로 대표(65ㆍ사진)가 바로 그다. 그는 이탈리아인들에게 썩은 정치를 도려낼 해결사로 떠오르고 있지만 외부에서 보기에는 이탈리아발(發) 금융위기의 진앙지다.이번 총선에서 득표율 25%를 기록한 뒤 기성 정치인들과 연정도 거부한 채 독자적인 정권 창출에 나선 그릴로에게 목표는 개혁 너머 새 정치판 짜기다. 그는 2조6000억달러(약 2800조원)에 이르는 이탈리아의 채무와 관련해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릴로는 "공공부채 이자가 연간 1000억유로에 이르면 부채 재협상 말고 대안이 없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이어 부채 재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탈리아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을 떠나 옛 리라화(貨)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지난해 치프라스 대표가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공약으로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상황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탈리아가 사실상 유로존에서 이탈했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어 유로존 안정을 원하는 이들이 아연실색하고 있다.오성운동은 부패척결을 강조한다. 하지만 긴축 반대, 유로존 탈퇴, 채무불이행 같은 급진 공약은 세계 금융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다시 몰고올 내용들이다.그릴로는 '개혁 지속'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상원 과반 확보에 실패한 제1당 민주당이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자유국민당과 연정 구성마저 거부했다. 이탈리아 정국이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그는 지난 총선이 "리허설에 불과했다"며 재선거에서 오성운동을 다수당으로 만들겠다며 떠벌리고 있다.그릴로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옌스 바이트만 독일 중앙은행 총재는 "이탈리아 정치인들이 개혁에서 뒷걸음질치며 유로존 탈퇴 운운하고 있다"면서 "이탈리아는 차후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그릴로의 주장이 과거 이탈리아 독재 세력의 주장과 일치한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그를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지목했다.그릴로가 정치에 입문할 수 있었던 것도 이탈리아 정치의 후진성 때문이라는 게 슈피겔의 설명이다. 제노바 태생인 그릴로는 1980년대 중반 TV 고정 프로 진행자로 활동할만큼 인기 있는 정치 풍자 코미디언이었다. 그러던 중 사회당 출신 베티노 크락시 총리를 풍자하다 TV 출연이 금지됐다.이에 반발한 그릴로는 인터넷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그는 블로그에서 이탈리아 정치판 물갈이를 끈질기게 주장해 대중의 지지 확보에 성공했다.2005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부패 및 금융 스캔들과 싸워온 그릴로를 '유럽의 영웅'으로 치켜세웠다. 이런 그릴로가 지금 이탈리아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백종민 기자 cinqang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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